[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고미숙 고전평론가 "행복한 백수로 살려면 문화적 역량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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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정규직이라고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의 배치를 바꾸고 인식을 전환하면 백수도 명랑하게 살 수 있어요. 백수의 소명은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자신을 ‘중년 백수’라 칭하는 고미숙 고전평론가(사진)의 말이다. 그는 최근 연암 박지원의 삶과 마음가짐을 기반으로 오늘날 청년 백수에게 조언하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를 출간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저자의 연암 박지원 관련 강연을 본 편집자의 제안으로 책을 쓰게 됐다. 오랜 기간 연암을 연구해온 저자는 그를 ‘백수의 원조이자 21세기 청년들의 영원한 길벗’이라고 소개한다. 연암은 백수일 때도 돈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했다. 늘 지식을 갈구했고 많은 벗을 사귀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고 평론가는 ‘세대공감’ ‘대중지성’을 기치로 내걸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천으로 옮겨왔다. 인문의역학연구소인 감이당, 동양고전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 공동체 남산강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세미나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그는 “누구나 모든 정보에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엘리트 지성의 시대는 끝났다”며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각자의 삶을 탐구하는 대중지성이 떴고 한편에서는 고령화, 저출산에 청년실업 문제까지 겹치면서 세대 갈등은 깊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간 세대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이유다. 고 평론가는 “청년과 장년층이 배움을 연계로 한자리에 모여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청년들의 관심은 노동과 관계, 여행과 공부에 집중돼 있다. 책은 행복한 백수의 삶을 즐긴 연암의 이야기를 끌어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접목한다. 시작은 자립이다. 고 평론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집을 나와 밥벌이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돈이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고 생활력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독립했다면 배우면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일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백수는 당연히 지성을 연마해야 하고 지식에서 지성으로, 지성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길은 백세시대를 맞은 백수의 최고 전략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식공동체를 형성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백수는 명랑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이롭게 한다. 그 명랑함으로 사람과 사람을, 세상과 세상을 연결하는 존재다.’ 책 속 구절이 새롭게 와 닿는다. (고미숙 지음, 프론티어, 279쪽, 1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