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의 중요성 간파… 국가 이익·자존심 지켰다

공병호의 파워독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일본 고지도 등 사재 털어 수집

외규장각 조선의궤 약탈한
프랑스 해군 위법도 밝혀내

국제법 연관된 사안 발생하면
정부에 이론적 대응책 조언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이충렬 / 김영사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0년을 맞는 해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었지만 대한민국 수립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 공화국이 큰 꿈을 안고 출발했지만 대한민국처럼 괄목할 만한 성취를 해낸 나라가 몇이나 있을까. 귀한 것은 희생과 헌신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오기에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과 땀이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일생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인물작가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이충렬이 펴낸 여섯 번째 책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김영사)이다. 이 책은 국제법학자로서 독도, 외규장각 의궤 반환, 재일동포 인권, 종군위안부,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과 난민 등 어려웠던 시절에 조국과 인권을 위해 헌신한 고(故) 백충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생애를 복원해냈다. 한 인물의 활동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생의 종언과 함께 사라지기 쉽다. 그러나 작가의 고증과 필력을 통해 되살아나서 후인들에게 영원한 기록으로 남겨지게 됐다.
“외교력이 향상돼야 국민의 삶도 좋아질 수 있다”는 백 교수의 말은 지금 우리의 분발을 촉구한다. 구한말 역사를 읽다 보면 국제법에 무지한 조상들이 나라의 곳간까지 털어가도록 허락할 만큼 무지한 것에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는 모두가 법조인으로 가던 시절 생소하기 이를 데 없던 국제법을 전공했다. 학문을 통해 민족과 국가의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는 데 공헌한 국제법 학자의 삶은 공익이 드물고 사익이 넘쳐나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한다.백 교수는 외무부에서 국제법이 연관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이론적 대응책을 조언해 나라가 국익을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그는 자비로 1984년에 서울국제법연구원을 설치해 한국이 국제법 현안들에 대해 빠르고 정확하게 대처하도록 도왔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회담으로 인해 소멸됐다고 모두가 생각하던 시절, 그는 국제법적 근거를 제시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

독도 문제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그는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국제법적 자료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사재를 털어 일본의 고지도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일본의 유명한 지도학자인 이노우 다다타가가 1800년부터 1817년까지 일본 전체를 실측해 1870년에 발행한 ‘관판실측일본지도’에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되지 않았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1998년에는 거액의 사재를 들여 한국으로 이 귀한 자료를 갖고 왔다. 이뿐만 아니라 강화도 외규장각에 있던 조선 왕실 의궤를 약탈한 프랑스 해군의 행위가 국제법에 어긋나는 이유를 밝혀냈다.작가는 그를 인물탐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국제법 학자 백충현 교수의 삶은 길지 않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업적은 많고 생전에 보여준 학자적 자세는 후대들에게 귀감이 된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공병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