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2심서 부인한 '삼성 뇌물' 상당부분 박근혜 2심은 인정

승마 지원 뇌물액 72억원→70억원 줄었지만 '액수미상 뇌물 약속' 인정
제3자 뇌물도 이재용 1심처럼 '묵시적 청탁' 인정…"센터지원은 뇌물" 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삼성그룹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과 비슷하게 '승마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세부 내용은 재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에서 인정됐다가 2심에서 부정된 혐의를 다시 유죄로 뒤집은 양상이어서 상고심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24일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삼성의 승마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행위를 뇌물로 보고 유죄로 판단했다.

특검과 검찰이 삼성그룹에서 제공 혹은 약속했다고 판단한 총 433억원의 뇌물은 이번 항소심의 핵심 쟁점으로 꼽혔다.이 혐의에 대한 세부적 판단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1심, 이재용 부회장의 1·2심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433억원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 213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천800만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 등으로 나뉜다.
◇ 36억∼72억 '오락가락' 승마 지원, 박근혜 2심서는 70억원 인정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가 적용된 승마 지원금은 그간 관련 재판에서 유죄 판단이 바뀐 적은 없다.다만 뇌물 액수가 재판부마다 조금씩 달랐다.

이 혐의에 대한 첫 판단을 내린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삼성이 약속 혹은 지급한 213억원 중 코어스포츠 용역대금과 마필 구입비, 보험료 등 72억여원을 뇌물로 인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말의 소유권 36억원을 뇌물 액수에서 제외했다.

말을 무료로 쓰게 해 준 '불상의 이익'만 뇌물이라고 봤다.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1심에서는 마필 구매대금을 포함한 72억여원이 모두 뇌물이라고 봤고, 이날 2심 재판부도 이런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2억여원의 말 보험료는 최씨에게 이전됐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보고 뇌물 액수에서 제외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그간 재판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뇌물 약속'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아시안게임 때까지는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승마지원을 하겠다고 한 '액수 미상의 뇌물 약속'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 유·무죄 오간 재단·센터지원…박·최 2심은 '센터지원' 부분청탁 인정
승마 지원과 달리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천800만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단순 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를 두고 재판부별로 판단이 엇갈렸다.

이 부회장의 1심은 개별 현안들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은 없었지만,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지원금 16억여원은 유죄로 봤다.

다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은 대가관계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과 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보고 총 220억여원의 재단·센터 지원금은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 판단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1심에서 모두 똑같이 적용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와 비슷하게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에 대해서는 묵시적 청탁과 함께 건넨 뇌물이라고 봤다.

대신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부분은 대가관계 등에 비춰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을 통해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는 등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을 두고 있었고 있었으며 박 전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봤다.

정부에서 삼성의 경영승계에 우호적인 조처를 했다는 점에서 경영권 승계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묵시적 청탁의 존재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대가관계가 인정되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후원금은 뇌물로 인정하고, 부정청탁과 함께 전달된 돈으로 보기 어려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 다시 바뀐 판단 영향은…이재용 상고심·엘리엇 ISD 등 영향 주목
이날 재판부가 인정한 뇌물 액수는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이 부회장의 유·무죄 인정 범위나 향후 확정될 형량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의 2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마필 구매대금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이 다시 뇌물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상고심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 부회장은 회삿돈을 횡령해 삼성의 승마 지원금과 재단·센터 지원금을 만들고 재산을 국외로 도피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 부회장의 1심에서는 횡령액을 뇌물액과 같은 89억여원으로, 2심에서는 36억원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날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의 판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의 뇌물 관련 혐의 액수는 약 87억원이 된다.

이대로 확정되면 형량이 가중되는 대목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죄의 양형은 50억원을 기준으로 '3년 이상의 징역'에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바뀐다.

이날 판결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하나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거론했다.이를 두고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개입했다며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