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유튜브는 '콘텐츠 포식자'… 제작·유통·투자 무차별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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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삼키는 '동영상 공룡'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넷플릭스, 유튜브가 국내 영상 콘텐츠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고 있다. 드라마부터 예능, 영화, 웹콘텐츠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사들인 한국 콘텐츠 방영권 수는 누계로 2016년 60여 편, 2017년 100여 편에서 올해 550여 편으로 대폭 늘었다. 구매액은 작품당 20억~4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옥자’부터 ‘범인은 바로 너!’ ‘킹덤’ ‘좋아하면 울리는’ 등 한국에서 자체 제작했거나 제작 예정인 오리지널 콘텐츠에도 최소 15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콘텐츠업계 초비상
넷플릭스가 사들인 방영권
2016년 60편→올 550편
유튜브 크리에이터 1만명
사용자 시청패턴 변해
시장 뺏기면 회복 어려워
지상파방송 타격 커져
IPTV·포털도 위기감 확산
영상 콘텐츠는 익숙해진 경로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어 한번 시장을 뺏기면 이용자의 관심을 되돌리기 힘들다. 한국 내 가입자는 물론 한국 콘텐츠를 ‘싹쓸이’하는 글로벌 동영상 공룡들의 전진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제작·투자시스템 등 지각변동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먼저 협업을 위한 ‘러브콜’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기존 콘텐츠의 방영권을 비싸게 팔 수 있고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공동 제작까지 맡으면 비용 걱정 없이 대작을 만들 수 있다”며 “국내 업체보다 넷플릭스에 우선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방영권이 287억원이 넘는 거액에 넷플릭스에 판매된 일을 계기로 이런 현상은 심해질 전망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넷플릭스의 진출로 인해 단순히 콘텐츠 유통에만 변화가 있는 게 아니라 제작, 투자 시스템 등 시장의 판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튜브도 국내 1인 크리에이터 1만여 명을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독자가 10만 명 이상인 국내 채널은 지난해 기준 1275개에 달한다. 2015년 368개, 2016년 674개로 매년 2배씩 증가하고 있다.◆콘텐츠 제작 ‘하청기지’ 우려
이로 인해 방송, 통신, 포털 등 업계에선 다수의 영상 콘텐츠를 송두리째 해외 자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작사나 크리에이터엔 좋은 기회로 여겨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외국 업체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거대한 해외 자본이 콘텐츠 시장의 독이 된 사례는 대만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대만 영상콘텐츠산업은 중국 자본의 대대적 투자에 맞닥뜨렸다. 대만의 콘텐츠 제작사 지분을 사들이고 노하우를 쏙쏙 빼갔다. 이후 대만 영상 콘텐츠 업계는 자생력과 시장 존립 기반을 잃고 중국 자본에 종속됐다.중국 자본은 당시 대만 업체의 지분에 투자하는 방식이었지만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한국 등 해외시장에 직접 진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공습은 사용자의 시청 패턴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어서 산업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방송계 “제작비 밀린다”
가장 비상이 걸린 쪽은 방송이다. 지상파 방송은 심각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케이블채널 등에 서서히 자리를 빼앗기더니 이젠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인해 2차 타격을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지상파 방송의 매출은 총 3조6837억원으로 전년 대비 7.9% 감소했다. 2015년 4조1007억원과 비교하면 10% 이상 줄었다.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넷플릭스에 비해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한 국내 방송사들은 더욱 밀리게 된다”며 “대중의 관심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작품에 쏠릴 수밖에 없고 출연자 섭외도 힘들어져 작품의 질이 점점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케이블TV, 인터넷TV(IPTV)와 같은 유료방송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cord cutting)’도 가시화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유료방송에 가입했다가 해지한 가구 비율은 2015년 3.13%에서 2016년 6.54%, 지난해 6.86%로 뛰었다.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보다 속도가 빠르다.
◆통신·검색시장도 잠식 위협
OTT 사업에 뛰어든 통신사들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옥수수(SK텔레콤)’ ‘올레tv모바일(KT)’ ‘U+비디오포털(LG유플러스)’ 등 통신사별 OTT 서비스 가입자 수는 각각 700만~90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각 통신 서비스 가입자의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앱(응용프로그램)이 설치돼 있고, 요금제별로 무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영향이다. 실질적으로 유료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은 통신사별로 전체 가입자의 5~1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등 포털 업체들은 동영상은 물론 포털사업 자체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유튜브의 사용시간은 289억 분, 네이버는 130억 분으로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을 뜻하는 ‘Over The Top’의 준말.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예능, 영화 등을 즐길 수 있다. 일일이 내려받는 게 아니라 스트리밍 방식으로 이용하면 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