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사, 뛰노는 아이들… 여기서는 골목이 天國

여행의 향기

낭만이 넘치는 쿠바여행 (6) - 트리니다드 ①
울퉁불퉁한 돌길에 노란색 담벼락의 건물이 줄지어 들어선 트리니다드 골목길.
카리브해의 물빛 바람을 머금은 눈부신 원색의 쿠바에서도 트리니다드의 색깔은 단연 노란색이다. 이곳의 모든 컬러는 트리니다드의 해바라기 빛깔에 압도당한다. 낮에는 노란색이 이 근세 식민풍의 도시를 지배한다면 저녁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 해적의 야습처럼 이 도시를 찾아든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이 차분하고 정겨운 도시에 쏟아지는데 나지막한 지붕과 담벼락 사이를 노란색 물감을 묻혀 휩쓸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 풍겨 나온다. 그런 뜨거운 남국의 색감에도 그다지 더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드넓은 하늘과 그 하늘색이다. 푸른 하늘이 캔버스가 돼 도시의 풍광을 한결 시원하게 그려준다.

저녁마다 마요르 광장에서 춤의 향연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트리니다드의 장점은 그리 높지 않은 종탑에 올라서도 멋진 전망을 누릴 수 있는 점이다. 노란색으로 빛나는 담장과 골목 사이에 어김없이 자리잡은 토산품 가게나 음식점은 이국의 나그네를 시원하게 반겨준다. 이곳의 명물이라는 칵테일 칸찬차라를 한 잔 마시며 역시 노란색을 내뿜는 담벼락을 쳐다보는 호사도 누려볼 만하다. 저녁은 단연 춤이다. 춤의 장르를 굳이 나눌 필요도 없다. 매일 저녁 8시면 이곳의 대부분 여행자는 마요르 광장 근처 계단에 펼쳐진 카사 데 라 무지카(음악의 집)에 모인다. 각국에서 모여든 춤꾼들은 각자 자기 스타일의 춤을 춘다. 이곳에서 솜씨를 뽐내기 위해 사전에 안무를 준비한 커플도 보인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욕망을 몸으로 표현하는 어색함과 수줍음의 표현은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다.

골목길에 앉아 공예품을 만드는 트리니다드 여인들.
돌로 만든 보도를 지나는 마차의 소음에 도시가 잠에서 깨는 아침이 찾아오면 다시 노란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쿠바 사람은 수다스럽다. 새벽에 거리를 산책하러 나가는 길에 보면 집밖에 나와 이웃집 주민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시간도 더 지났을까? 처음 지나칠 때 보여주던 그 자세로 여전히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오래 나눌까? 잊고 지내던 정다운 시절 아름다웠던 시골 마을의 정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스페인어를 잘 아는 분에게 물어보니 그 수다는 대부분 싸움이라고 말한다. 싸움도 소통의 한 방식이니 화끈한 소통을 한다고 봐야겠다. 자갈길을 달그락 거리며 다니는 마차 바퀴의 소리가 잦아들 무렵이면 종루에 올라 전망을 봐야 한다. 이 마을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넘친다. 시골의 읍내 같은 분위기다.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풍경이 유혹한다. 어디를 가도 어린이들의 힘찬 발걸음과 건강함이 이 도시의 활력소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 속의 삶의 현장이다.

노예무역과 설탕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

전망대 역할을 하는 혁명역사박물관 종탑.
트리니다드의 랜드마크는 혁명역사박물관이다. 트리니다드의 전망을 보여주는 종탑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박물관이지만 원래는 성프란시스코 수도원이었다. 종루에 올라 아스라한 트리니다드의 전망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지난했던 쿠바와 이 도시의 역사다. 파스텔 톤의 노란색 종루는 쿠바의 동전 25센타보에 새겨진 그림이다. 이 탑의 아치형 틀을 화면에 담고 도시의 전망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을 찍고 내려와야 한다.

다 돌아보기에는 시간의 제약이 있겠지만 도심 관광 스폿은 누구나 돌아보는 곳이기에 이곳에서는 세로로 가로로 걸으면서 도시가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이 도시가 뿜어내는 해바라기빛이 사라지는 지점까지 걸으면 산 아래 한국의 여름 풍경 같은 고즈넉함이 살아 숨쉬고 있다. 역사와 혁명과 투쟁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도시도 사실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트리니다드의 중심에는 마요르 광장이 자리한다. 18~19세기 노예무역과 설탕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다. 곳곳에 자리 잡은 건물이 옛 영화의 증거물들이다. 18세기에 건축된 산체스 이스나가의 집이 오른편에 있고 현재는 건축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광장 북동쪽에는 1892년에 세워진 삼위일체 성당이 보인다. 광장 북서쪽에는 성프란시스코 교회가 있다. 이 교회의 종탑을 참을성 있게 올라가면 트리니다드를 한눈에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트리니다드의 상징 칸찬차라 칵테일고풍스러운 가로등과 광장의 중앙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의 여신상이 있다. 자갈길, 고풍스러운 건물, 총천연색의 담벼락 사이를 걸어 야자수 나무 아래 뮤즈의 여신상은 도시를 지키고 있다. 뮤즈는 그리스의 여신으로 음악을 관장하는 신이다. 지나간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억의 신이며 음악, 춤, 문학에 능한 예술의 여신이다. 뮤지엄의 어원이며 뮤즈의 여신을 모시는 전당이란 뜻이다. 영어 뮤직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 뮤즈의 여신상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트리니다드가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카사 데 라 무지카의 계단은 예술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천국으로 변모한다. 이 도시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걸어서 다녀야 한다. 발바닥을 자극하는 돌보도의 촉감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어다니며 골목을 구경하고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건축물이나 시장의 아기자기한 토산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근세 이전 부침의 역사가 칸찬차라 칵테일 향처럼 온몸에 전해온다. 쿠바는 칵테일이 발달한 나라다. 아바나에는 리브레, 모히토, 다이키리, 피나콜라다 등이 있다. 트리니다드가 고향인 칵테일이 있는데 칸찬차라이다. 럼을 기본으로 꿀, 물, 라임, 얼음을 넣은 칵테일이다. 처음에는 군인용 음료로 개발된 서민 음료다. 다섯 가지 재료를 모두 섞어 전용 항아리 잔에 담아 마신다. 스틱으로 저어 마셔야 밑에 가라앉은 꿀을 술과 섞어 먹을 수 있다. 성급한 여행자는 바닥에 깔린 사탕수수 즙을 남길 수 있으니 잘 저어서 차분하게 진한 라이브 음악과 분위기를 즐기면 좋다. 트리니다드는 노란빛에 물들어 잠들었다 해바라기 꿈에 깨어나는 동화의 나라다.

트리니다드=글 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 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여행정보

쿠바섬 중부에 있으며 1514년에 건설됐다. 18세기와 19세기 사탕수수산업의 번성과 도시의 흥망이 연결된다. 19세기 중엽에 시간이 멈춰버린 야외의 거대한 박물관이다.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도심만 보면 하루에 마칠 수 있다. 여행의 시작은 마요르 광장에서 시작한다. 이 광장에는 산티스마 트리니다드 교회가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는 트리니다드 혁명역사박물관이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종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