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경쟁법 전면 개정… 공정위 독점 깨 경제민주화 가속
입력
수정
권한 분산으로 '갑질 근절·재벌 개혁' 두 마리 토끼 잡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발표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의 총 15장 130조, 부칙 16조를 합해 5만여 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권한 분산'이다.그동안 공정위가 독점하던 권한을 다른 기관 등과 나누며 '갑질' 피해구제 창구를 넓히고 법 위반 억지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에 있어서도 특정 기업그룹을 겨냥하는 규제를 두기보다는 다른 정부부처와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해야만 현실에 안착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심의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 독점 권한 내려놓는다…형사·행정·민사 분산
시장 독점 감시가 주요 업무인 공정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요 권한을 독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규정됐던 전속고발제가 대표적이다.전속고발제는 공정위 소관 법률 위반 고발을 공정위가 독점하도록 하는 제도다.
고발 남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를 막으려는 조처였다.
하지만 법 위반 혐의가 짙은 상황에서도 공정위가 움직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검찰·감사원·조달청 등이 요청하면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하는 '의무고발요청제'가 도입됐지만, 실제 활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불공정행위를 당한 피해자 구제도 공정위가 독점했다.
공정위 소관 법률 사건을 피해자가 신고했음에도 조처하지 않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 헌법소원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폐해가 있었다.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통해 이같은 권한 독점을 깼다.
공정거래법상 중대 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했다.
법원에 불공정거래행위를 멈춰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도입해 구제 창구를 넓혔다.
아울러 민사 구제수단을 강화하기 위한 자료제출명령제, 행정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담합·시장지배력 남용·불공정거래행위 과징금 2배 상향 등의 조항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형사·행정·민사'의 엇박자를 막고 갑질 근절을 위한 경쟁법 집행에 비로소 경쟁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한 분산은 역할 분담의 의미도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년에 신고 사건이 4천 건, 민원은 5만 건, 시정명령 이상 처분은 500건 이상이라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한 악순환이 있었다"면서 "공정위에 집중된 사건 처리 부담을 분산해 합리적인 사건 처리 수단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공정위 아니면 재벌개혁 안 된다는 인식 버려야"공정위는 재벌개혁에 있어서도 다른 부처와의 협업을 통한 예측 가능하고 지속할 수 있는 규율 체계를 개정안에 담고자 했다.
특정 기업 '맞춤형' 규제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총수일가 지배력 확대를 막기 위해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지분 의결권 제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공정위는 개편안에 이를 담지 않았다.
이 규제를 도입했을 때 실제 의결권이 제한되는 대기업집단은 삼성그룹이 유일하다.
이를 법률로 막는 것은 경제적 비용과 정치적 저항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규제도 특위안을 단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례는 법무부(상법·집단소속법), 금융위원회(금융그룹통합감독 시스템), 보건복지부(스튜어드십 코드), 기획재정부(세법) 등과의 협업으로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번 기회에 이러한 예외 사례를 법률로 규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지난 30년간 경제민주화가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 이유는 경직적인 사전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갔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재벌개혁을 포함한 기업집단 법제의 개선을 위해 모든 문제를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양한 부처의 법률 수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체계적 합리성을 높이는 것이 재벌개혁의 지속 가능한 성공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 '알고리즘 담합' 등은 장기 과제로 유보김상조 위원장 임기 2년차 중점 과제이기도 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정위는 다양한 외부 의견을 들었다.
작년에 법 집행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고, 올해 3월부터는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공정거래법 특위를 발족했다.
아울러 국회·경제계·학계·법조·언론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도 열었다.
특히 특위는 4개월 동안 논의 끝에 지난달 17개 과제 논의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공정위에 전달했다.
공정위는 많은 부분에서 특위의 권고를 수용했지만, 앞서 언급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추가 제안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위는 1위 사업자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 점유율 기준을 현행 50%에서 40%로 강화하는 등의 개편안도 내놨지만, 역시 개정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일감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국내 계열사뿐 아니라 해외계열사도 포함해야 한다는 권고도 법제화되지 않았다.
이 밖에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전망됐던 '알고리즘 담합' 규정도 빠졌다.
김상조 위원장은 "개편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아직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공감대가 확고하게 마련되지 않은 분야는 장기 과제로 유보했다"면서 "타 부처와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분야는 (공정거래법보다) 시각을 더 넓혀서 대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속고발제와 위원회 전원 상임위원 전환은 특위에서도 의견이 갈렸지만 현시점에서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기에 판단을 내렸다"면서 "최종 판단은 공정위가 내리고 그 책임 역시 진다"고 강조했다.
이제 남은 관건은 국회다.
법률 개정안인 만큼 국회 문턱을 통과해야만 현실적인 효력을 미칠 수 있다.김 위원장은 "40일간 입법예고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해 조속히 정부 입법 절차를 마치겠다"면서 "국회에서도 심도 있는 심의가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발표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의 총 15장 130조, 부칙 16조를 합해 5만여 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권한 분산'이다.그동안 공정위가 독점하던 권한을 다른 기관 등과 나누며 '갑질' 피해구제 창구를 넓히고 법 위반 억지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에 있어서도 특정 기업그룹을 겨냥하는 규제를 두기보다는 다른 정부부처와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해야만 현실에 안착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심의 과정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 독점 권한 내려놓는다…형사·행정·민사 분산
시장 독점 감시가 주요 업무인 공정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요 권한을 독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규정됐던 전속고발제가 대표적이다.전속고발제는 공정위 소관 법률 위반 고발을 공정위가 독점하도록 하는 제도다.
고발 남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를 막으려는 조처였다.
하지만 법 위반 혐의가 짙은 상황에서도 공정위가 움직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검찰·감사원·조달청 등이 요청하면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하는 '의무고발요청제'가 도입됐지만, 실제 활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불공정행위를 당한 피해자 구제도 공정위가 독점했다.
공정위 소관 법률 사건을 피해자가 신고했음에도 조처하지 않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 헌법소원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폐해가 있었다.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통해 이같은 권한 독점을 깼다.
공정거래법상 중대 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했다.
법원에 불공정거래행위를 멈춰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도입해 구제 창구를 넓혔다.
아울러 민사 구제수단을 강화하기 위한 자료제출명령제, 행정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담합·시장지배력 남용·불공정거래행위 과징금 2배 상향 등의 조항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형사·행정·민사'의 엇박자를 막고 갑질 근절을 위한 경쟁법 집행에 비로소 경쟁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한 분산은 역할 분담의 의미도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년에 신고 사건이 4천 건, 민원은 5만 건, 시정명령 이상 처분은 500건 이상이라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한 악순환이 있었다"면서 "공정위에 집중된 사건 처리 부담을 분산해 합리적인 사건 처리 수단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공정위 아니면 재벌개혁 안 된다는 인식 버려야"공정위는 재벌개혁에 있어서도 다른 부처와의 협업을 통한 예측 가능하고 지속할 수 있는 규율 체계를 개정안에 담고자 했다.
특정 기업 '맞춤형' 규제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총수일가 지배력 확대를 막기 위해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지분 의결권 제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공정위는 개편안에 이를 담지 않았다.
이 규제를 도입했을 때 실제 의결권이 제한되는 대기업집단은 삼성그룹이 유일하다.
이를 법률로 막는 것은 경제적 비용과 정치적 저항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규제도 특위안을 단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례는 법무부(상법·집단소속법), 금융위원회(금융그룹통합감독 시스템), 보건복지부(스튜어드십 코드), 기획재정부(세법) 등과의 협업으로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번 기회에 이러한 예외 사례를 법률로 규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지난 30년간 경제민주화가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 이유는 경직적인 사전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갔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재벌개혁을 포함한 기업집단 법제의 개선을 위해 모든 문제를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양한 부처의 법률 수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체계적 합리성을 높이는 것이 재벌개혁의 지속 가능한 성공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 '알고리즘 담합' 등은 장기 과제로 유보김상조 위원장 임기 2년차 중점 과제이기도 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정위는 다양한 외부 의견을 들었다.
작년에 법 집행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고, 올해 3월부터는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공정거래법 특위를 발족했다.
아울러 국회·경제계·학계·법조·언론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도 열었다.
특히 특위는 4개월 동안 논의 끝에 지난달 17개 과제 논의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공정위에 전달했다.
공정위는 많은 부분에서 특위의 권고를 수용했지만, 앞서 언급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추가 제안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위는 1위 사업자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 점유율 기준을 현행 50%에서 40%로 강화하는 등의 개편안도 내놨지만, 역시 개정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일감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국내 계열사뿐 아니라 해외계열사도 포함해야 한다는 권고도 법제화되지 않았다.
이 밖에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전망됐던 '알고리즘 담합' 규정도 빠졌다.
김상조 위원장은 "개편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아직 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공감대가 확고하게 마련되지 않은 분야는 장기 과제로 유보했다"면서 "타 부처와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분야는 (공정거래법보다) 시각을 더 넓혀서 대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속고발제와 위원회 전원 상임위원 전환은 특위에서도 의견이 갈렸지만 현시점에서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기에 판단을 내렸다"면서 "최종 판단은 공정위가 내리고 그 책임 역시 진다"고 강조했다.
이제 남은 관건은 국회다.
법률 개정안인 만큼 국회 문턱을 통과해야만 현실적인 효력을 미칠 수 있다.김 위원장은 "40일간 입법예고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해 조속히 정부 입법 절차를 마치겠다"면서 "국회에서도 심도 있는 심의가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