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수 증가를 우려하는 이유

"올 국세수입 첫 300조 웃돌 것
가계와 기업 빚 쌓이는데
세금만 늘어

정부가 직접지출 늘리기보다
가계의 소비여력 높이고
기업 투자여력 살리는 게 효과적"

추광호 <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 >
최근 발표되고 있는 경제지표들이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기준 설비투자는 17년 만에 4개월 연속 감소했고,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5000명 증가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취업자 수가 1만 명 감소했던 2010년 1월 이후 8년6개월 만에 가장 부진한 수치다.

분배지표도 좋지 않다. 올해 2분기 ‘소득 5분위배율’은 5.23배로 나타나 2분기 기준으로 2008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 배율은 최상위 20% 가구(5분위)의 월평균 소득을 최하위 20%(1분위)의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불균형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경제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만, 올해 국세수입은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5년 전에 비해서는 약 100조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세목별로는 법인세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올해 법인세는 72조원으로 전년 대비 21%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소득세는 88조원, 부가가치세는 71조원으로 각각 17%, 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수입이 경상 국내총생산(GDP)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납세자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경상GDP에서 국세와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조세부담률’이 올해 또다시 최대치를 경신하며 21.6%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수가 늘어나 정부의 곳간이 두둑해진 원인이 경기가 좋아져서 세금을 내는 사람들의 수입이 늘고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서였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세수 증가가 호(好)경기의 영향이 아닐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세가 늘어난 이유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일부 기업의 수익 증가와 함께 세법 개정으로 인한 각종 세액공제 축소, 법인세율 인상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가계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빚은 쌓여 가는데 내야 할 세금은 많아지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GDP 대비 민간소비는 48.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가처분소득 대비 민간소비 역시 5년 연속 하락했다. 올해 2분기 말 가계부채 잔액은 1493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 소득까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가계 빚이 계속 늘어나면 소비 여력은 더욱 줄어들고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위험마저 커진다.

정부는 세수 증대를 바탕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산을 통한 해결을 모색한다. 하지만 재정을 통한 일시적 지원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 더구나 한 번 늘린 복지성 재정 지출은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재정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나마 호황인 일부 산업의 경기가 꺾이거나 가계의 소비 여력이 감소해 내수가 어려워지면,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정부 지출은 줄이기 어려워 국가의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세수 증대보다 시급한 것은 민간부문의 활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정부가 돈을 많이 걷어 직접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세(稅) 부담을 낮춰 가계의 소비여력과 기업의 투자여력을 높여주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연구개발(R&D)과 일자리 창출 관련 투자에 대해서는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세금은 필요한 만큼만 걷어서 적재적소에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증세를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경제 활력을 살리는 것이다.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 세율을 낮춰도 세수는 늘어나게 마련이다. 경제는 안 좋은데 세수만 늘어나면 오히려 민간부문의 경제 활력만 구축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최근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 와중에 만난 국세 300조원 시대의 개막이 우려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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