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떡잎' 바이오社에 뭉칫돈… 100억 이상 유치기업 4→13곳

바이오벤처에 돈 몰린다

"신약 개발 스타트업 잡아라"
벤처캐피털 상반기 신규투자
4139억…작년 실적 이미 넘어
투자조합 바이오 비중 3→30%

건강해진 바이오 생태계
연구개발 긍정적 성과 속출
초기 기업에도 자금지원 넘쳐
적절한 '과열'이 산업 키울것
ABL바이오 연구원들이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의 본사 연구실에서 약물실험을 하고 있다. 설립 3년차인 이 회사는 이중항체 기술을 응용해 단기간에 29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올 들어서만 100억원 이상의 거액을 투자 유치한 바이오벤처가 크게 늘면서 한국 바이오산업의 성장 속도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오기업의 자금력이 탄탄해지면서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이 생긴 데다 수백억원 이상이 필요한 글로벌 임상에 나설 기회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될성부른 바이오벤처에 돈 몰린다올 들어 7월까지 벤처캐피털로부터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바이오벤처는 ABL바이오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국내 벤처캐피털 10곳에서 총 700억원을 유치했다. 이중항체 기술을 기반으로 항암제,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 중인 이 회사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29개에 달한다. 한미약품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두 개의 표적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항체 기술에서는 국내 선두주자로 꼽힌다.

올 들어 100억원 넘는 투자를 받은 바이오벤처는 모두 13곳이다. ABL바이오를 비롯해 급성 췌장염 치료제 등 다섯 개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 중인 SCM생명과학(386억원), 유전자가위 기술을 보유한 툴젠(300억원), 감염병 예방 백신 개발회사 유바이오로직스(300억원), 면역항암제 개발업체 다이노나(250억원), 면역항암제 및 당뇨병 치료제 개발사 티움바이오(230억원),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디앤디파마텍(200억원) 등이다. 지난해의 세 배가 넘는다. 작년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바이오벤처는 브릿지바이오, ABL바이오, 엑소코바이오, 티움바이오 등 네 곳이었다.벤처캐피털의 바이오 투자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올 상반기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4139억원으로 지난해 총투자액인 3788억원을 넘어섰다. 바이오 투자조합 규모도 커지고 있다. 투자조합이 운영 중인 금액은 지난해 20조2911억원에서 올해 6월 기준 21조2381억원으로 증가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상무는 “10년 전만 해도 3~4%에 그쳤던 투자조합의 바이오 투자 비중이 요즘엔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고 말했다.

◆“‘K바이오’ 재도약 계기”

바이오기업의 신약 개발 성공률은 1% 미만에 그친다. 그런데도 투자가 몰리는 것은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6000억달러에서 2030년 4조4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도체, 자동차, 화학 3대 산업을 합한 것보다 크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예전에는 한국 바이오산업이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어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며 “최근에는 기술수출 등 연구개발 성과가 속속 나와 바이오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오기업의 회계처리 기준 강화도 바이오 투자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 상무는 “투자자들은 3년 이상을 내다보고 바이오 업체에 투자하기 때문에 단기적 이슈로 투자심리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투자 규모가 증가하면서 한국 바이오 업계가 한 단계 올라설 계기가 마련됐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백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기업이 조달한 자금이 풍부해질수록 의약품 개발을 빠르게 진행할 여력이 생긴다.

◆“적당한 과열 있어야 산업 발전”

일각에서는 바이오 투자가 과열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신약개발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이 웬만한 중견 상장회사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흔해졌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10억~20억원이 필요한 임상 1상 단계에서 100억원대 이상 자금을 유치한 사례도 많다. 이 부회장은 “일부 바이오기업은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 놓고 임상시험을 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미리 투자를 확보해두려는 기업 입장과 고수익의 투자처를 찾는 시장 수요가 맞물려 상승 효과를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산업 발전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과열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바이오업계 투자 열풍은 나쁜 의미의 과열이 아니다”며 “산업이 성장할 때 적당한 과열 현상이 있어야 수년 뒤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