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이 현 키움증권 사장 "키움은 IT 회사, 직원들 틈틈이 코딩 배워라"

온라인 사업 개척자…종합증권사 도약 이끈다

인생의 전환점, 코딩
사내 전산교육 받다 전문가 돼
동원증권 온라인 TF팀 이끌어
1999년 키움증권 창립 멤버로

인수합병 회사 도맡아 키워
키움저축銀 1년 만에 흑자전환
우리자산운용 인수한 키움자산운용
기관영업 주력…채권형펀드 강자로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올해부터 키움증권을 이끌고 있는 이현 사장(62)은 직원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딩을 배우라”고 권유한다. 키움증권은 증권회사가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에 가깝다는 판단에서다. IT를 앞세워 온라인 증권이란 새 영토를 개척하고 키워온 것이 키움증권의 역사다. 디지털 시대의 언어로 불리는 코딩에 친숙해야 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장의 생각이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도 코딩이었다.

은행원 시절부터 익힌 코딩이 사장은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83년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은행만큼 안정적인 직장도 없던 시절이었다. 코딩을 처음 접한 것은 사내 전산교육 시간이었다. 3개월간 업무에서 빼준다는 혜택이 붙었지만 아무도 지원자가 없었다. 이 사장은 “당시만 해도 전산은 고졸 직원이 하는 하찮은 일이라는 편견이 있었다”며 “대졸 사원은 모두 엘리트 코스로 갈 수 있는 여신이나 외환교육을 받고 싶어했다”고 회상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코딩은 그의 뇌 구조를 바꿔놨다. 고전문학과 철학책을 끼고 살았던 ‘문돌이’는 금세 코볼 등 프로그래밍 언어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사내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그의 자리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설치됐다. 당시 컴퓨터는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이었다.

IT와의 인연은 1987년 동원경제연구소로 이직해서도 이어졌다. 그는 1998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서 온라인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이끌었다. 온라인 증권사 설립 등을 검토하던 시기였다. 당시 인터넷 이용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온라인으로 증권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최대 난관은 증권계좌 개설을 위한 실명확인 절차였다. 증권사 지점을 직접 방문해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상식이던 시절이었다. 지점이 없는 온라인 증권사가 증권계좌를 개설할 방법이 없었다.이 사장은 1980년대 후반 한국전력 등이 국민주 방식으로 기업공개(IPO)를 했을 때 은행에서 증권계좌 개설을 대행해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법적 근거로 제시해 정부로부터 은행 등 타 금융기관 실명 확인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정부청사가 있는 과천으로 가기 위해 매일 남태령을 넘었다”며 “새로운 기회가 보였던 순간”이라고 소회했다. 당시 불었던 벤처 열풍을 타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뿌리가 오프라인 증권사인 동원증권은 온라인 증권 사업에 신중했다.

1999년 이 사장은 동원증권을 나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키움증권의 창립멤버로 합류했다. 오프라인 점포 없이 온라인에서 투자자를 모은다는 파격적인 발상은 상당 부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조직 안정화의 달인(達人)키움증권의 수장 교체는 10년 만이다. 권용원 전 사장이 올해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되면서 키움자산운용 사장이던 이 사장이 키움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30년의 오랜 경력이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 이 사장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론과 인터뷰한 적이 없고 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왔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1957년생 닭띠다. 1960년대생 사장이 주류인 증권가에선 늦게 최고경영자(CEO)가 된 편이다. 증권가에서는 갑작스러운 경영 공백을 막기 위해 키움증권 창립멤버로서 회사이해도가 높은 이 사장을 앉힌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키움증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 사장이 키움증권 경영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이 사장이야말로 키움증권의 벤처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사장은 ‘덕장(德將)’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나서서 일을 처리하기보다 부하직원에게 끝까지 믿고 맡기는 편이다. 누군가를 한번 믿으면 성과를 낼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사교적이기보다 과묵한 성격이지만 이 사장을 믿고 따르는 직원이 많은 까닭이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는 주로 키움증권에 인수합병(M&A)된 회사의 경영을 도맡았다. 키움증권은 2012년 사업 다각화를 위해 삼신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키움저축은행을 설립했다. 이 사장은 키움저축은행의 첫 수장을 맡아 빠르게 회사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고객을 크게 늘렸고, 특화 대출상품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수익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썼다. 2012년까지 적자를 내던 키움저축은행은 이 사장이 맡은 뒤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우리자산운용을 인수한 뒤 새로 출범한 키움자산운용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관을 대상으로 채권형펀드를 파는 영업에 주력해 키움자산운용을 채권형펀드의 강자로 올려놨다. 주식, 대체투자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높이며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키움자산운용은 합병 후 운용자산이 70% 이상 불어나며 단숨에 전체 5위 종합자산운용사로 뛰어올랐다.

권 전 사장은 키움증권을 국내 주식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키웠다. 이 사장은 브로커리지 강자를 넘어 종합증권사로서의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은행(IB), 자기자본투자(PI), 부동산 투자 등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채권 분야에선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키움증권은 하반기 들어 30여 종의 국고채 및 회사채, 전자단기사채 10여 종을 발행금리 수준으로 판매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장은 오프라인 지점이 없기 때문에 과감한 전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반 증권사는 각 지점 리테일 부서를 통해 채권을 팔기 때문에 비용 문제상 채권을 싸게 팔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서점에 지나지 않았던 아마존이 세계 최대 유통업체가 된 것처럼 키움증권도 주식 거래의 틀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 다양한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종합증권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이 사장의 생각이다.

■이현 사장 프로필△1957년 광주 출생
△1982년 서강대 철학과 졸업
△1983년 조흥은행 입사
△1987년 동원경제연구소 연구원
△1988년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6년 국민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2000년 키움닷컴증권 이사
△2007년 키움증권 전무
△2013년 키움저축은행 대표(부사장)
△2016년 키움자산운용 사장
△2018년 키움증권 사장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