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첫날부터 이체 오류난 뱅크사인

김순신 금융부 기자 soonsin2@hankyung.com
지난 2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새 본인인증시스템 ‘뱅크사인’ 시연 행사장에선 한순간 적막이 흘렀다. 뱅크사인을 통해 은행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뒤 이체를 시도했지만, pc인터넷이 중단되면서 잠시동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체가 실패하자 화면을 바라보던 10여 명의 은행장 표정이 어두워졌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은행장은 “뱅크사인이 안착하려면 시스템 안정성이 핵심 요건인데 첫 시연부터 오류라니 앞길이 먼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은행연합회는 무선인터넷 과부하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설명했지만, 보안성과 편리함을 앞세워 공인인증서 대안으로 나온 뱅크사인은 첫날부터 체면을 구긴 셈이다.뱅크사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전자거래의 보안성과 편의성을 높인 인증 서비스다. 발급비용도 무료고 비밀번호를 6자리 숫자로만 설정할 수 있어 10자리의 복잡한 비밀번호를 지정해야 하는 공인인증서보다 편리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뱅크사인이 은행만 사용하는 ‘반쪽짜리’ 인증시스템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부터 나오고 있다. 소비자나 여타 금융회사가 선택할 만한 매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지문 인증 같은 첨단 인증 시스템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비밀번호에 기반한 뱅크사인에 편리함을 느낄지 의문”이라며 “은행 등 공급자 측면에선 보안성이 개선되지만, 소비자들이 공인인증서와 큰 차이를 느끼긴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현재 범용공인인증서를 사용하기 위해 연간 11만원의 발급비용을 내고 있는 법인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없는 점도 약점이다. 뱅크사인은 개인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만 쓸 수 있는 개인 공인인증서는 지금도 발급료가 없기 때문에 뱅크사인이 우위에 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이란 신기술을 등에 업고 등장한 뱅크사인이 2006년 국내 토종 ‘3세대 이동통신’이란 수식어로 포장됐다 다음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와이브로(무선 광대역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길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