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재벌家 빵집 아버지와 아들, 서로 다른 '사업가'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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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SPC그룹의 제빵 브랜드 샤니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 'A'사에 햄버거용 빵을 납품하고 있었다. A사는 날씨 탓에 빵이 상하는 일이 잦자 샤니 측에 방부제를 첨가해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다.
이를 보고 받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크게 분노하고 "절대 안 된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허 회장은 제품에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소비자와 약속했기 때문에 완제품이 아니더라도 이 약속을 깰 수 없다고 생각했다.글로벌 사업규모가 워낙 큰 A사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샤니는 경영상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허 회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허 회장의 단호한 거절이 믿음직스러운 인상으로 받아들여져 A사는 샤니의 제품을 계속 사용했다.
허 회장은 평소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988년 광화문에 파리바게뜨 1호점을 낸 뒤 30여년간 험난한 사업환경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빵업계 1위와 미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등 해외에 총 300개가 넘는 점포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가맹점주와 소비자에게 했던 약속을 지킨 결과라고 생각해서다.
빵집 아들로 태어나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게 하고, 좋은 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며 1986년 반포동에 파리크라상을 만들었던 허 회장은 국내 1등 제빵회사가 수입산 밀가루와 효모로 빵을 만드는 것이 마음에 걸려 굳이 수 백억원을 투입해 국내산 효모와 우리밀로 만든 빵을 내놨다.전기료, 인건비, 원자재 가격 등이 올라 빵값을 올려야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가맹점주와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값에 빵을 팔겠다는 약속이 깨질까봐 생산공정을 최대한 효율화해 인상을 자제할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본인을 사업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의 본질을 '먹거리'라고 생각했다. 먹거리는 소비자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업보다 더 엄격하게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게 평소 그의 철학이었다.
그런 허영인 회장에게 둘째 아들은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 6월 차남인 허희수 전 SPC그룹 부사장이 '대마초 유통 및 흡연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그룹 내에서 뚜렷한 사업성과를 내지 못하던 허 부사장에게 유학 경험을 살려 해외 사업의 일부를 맡겼던 허 회장은 아들이 '쉐이크쉑(쉑쉑버거)'이라는 글로벌 유명 브랜드를 국내로 들여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자 크게 기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들이 들여온 쉐이크쉑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업을 확대하자 그를 과감히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힘도 실어줬다.
그러나 쉐이크쉑이 들어온지 약 2년이 됐을 때 이 사업을 주도했던 둘째 아들이 '마약 혐의'로 구속되자 허 회장은 허 전 부사장을 앞으로 경영에서 영구 배제하라고 임원들에게 지시했다. 믿었던 아들이 소비자들을 실망시킨 데 따른 허 회장식의 분노였다.31일 허 전 부사장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첫 공판이었던 이날 재판에서 허 전 부사장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사건으로 가족·회사에 실망과 염려를 끼치고 건전한 우리 사회 발전에 누를 끼친 점에 대해 널리 용서를 바란다"고 얘기한 허 전 부사장은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사업가입니다"라고 답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이를 보고 받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크게 분노하고 "절대 안 된다"며 단번에 거절했다. 허 회장은 제품에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소비자와 약속했기 때문에 완제품이 아니더라도 이 약속을 깰 수 없다고 생각했다.글로벌 사업규모가 워낙 큰 A사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샤니는 경영상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허 회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허 회장의 단호한 거절이 믿음직스러운 인상으로 받아들여져 A사는 샤니의 제품을 계속 사용했다.
허 회장은 평소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988년 광화문에 파리바게뜨 1호점을 낸 뒤 30여년간 험난한 사업환경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빵업계 1위와 미국,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등 해외에 총 300개가 넘는 점포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가맹점주와 소비자에게 했던 약속을 지킨 결과라고 생각해서다.
빵집 아들로 태어나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게 하고, 좋은 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며 1986년 반포동에 파리크라상을 만들었던 허 회장은 국내 1등 제빵회사가 수입산 밀가루와 효모로 빵을 만드는 것이 마음에 걸려 굳이 수 백억원을 투입해 국내산 효모와 우리밀로 만든 빵을 내놨다.전기료, 인건비, 원자재 가격 등이 올라 빵값을 올려야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가맹점주와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값에 빵을 팔겠다는 약속이 깨질까봐 생산공정을 최대한 효율화해 인상을 자제할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본인을 사업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의 본질을 '먹거리'라고 생각했다. 먹거리는 소비자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업보다 더 엄격하게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게 평소 그의 철학이었다.
그런 허영인 회장에게 둘째 아들은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 6월 차남인 허희수 전 SPC그룹 부사장이 '대마초 유통 및 흡연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그룹 내에서 뚜렷한 사업성과를 내지 못하던 허 부사장에게 유학 경험을 살려 해외 사업의 일부를 맡겼던 허 회장은 아들이 '쉐이크쉑(쉑쉑버거)'이라는 글로벌 유명 브랜드를 국내로 들여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자 크게 기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들이 들여온 쉐이크쉑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업을 확대하자 그를 과감히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힘도 실어줬다.
그러나 쉐이크쉑이 들어온지 약 2년이 됐을 때 이 사업을 주도했던 둘째 아들이 '마약 혐의'로 구속되자 허 회장은 허 전 부사장을 앞으로 경영에서 영구 배제하라고 임원들에게 지시했다. 믿었던 아들이 소비자들을 실망시킨 데 따른 허 회장식의 분노였다.31일 허 전 부사장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첫 공판이었던 이날 재판에서 허 전 부사장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사건으로 가족·회사에 실망과 염려를 끼치고 건전한 우리 사회 발전에 누를 끼친 점에 대해 널리 용서를 바란다"고 얘기한 허 전 부사장은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사업가입니다"라고 답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