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상적인 정책 시야를 확보하려면…

"쉽게 보고 밀어붙인 최저임금 인상
불황 속 자영업자엔 직격탄
고용 쇼크, 분배 악화 원인 제공

정책의 효과 나타나지 않았다면
통계 타박 말고 원점으로 돌아가
'정책의 정합성'부터 성찰해야"

조동근 < 명지대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독선에 빠지면 균형을 잃는다. 지난달 26일의 갑작스러운 통계청장 경질은 치명적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정책 효과가 사전에 기대한 대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면 ‘정책 바보’거나 전지전능한 ‘정책의 신(神)’ 중 하나일 것이다. 정책 효과에 관한 제1 경구(警句)는 ‘예기치 않은 결과의 가설’이다. 사전적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된 가계동향조사는 소비지출에 초점이 맞춰진 조사이기 때문에 소득통계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소득동향을 분기별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계청도 참조만 하되 외부로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가 2017년 추석이 10월에 들어 일시적으로 4분기 소득분배 지표가 좋게 나오자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덜컥 언론에 공개해 일을 키웠다. 통계청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분기 자료를 발표했는데 기대와 달리 1, 2분기 내리 분배지표가 악화돼 사달이 난 것이다.2016년부터 제조업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경기 불황으로 소득이 감소하던 시기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으니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취업한 임금근로자는 임금 인상 혜택을 누리지만 무직자·실직자·영세자영업자는 취업과 영업에 곤란을 겪게 돼 이들이 주로 속하게 될 하위 20% 계층 소득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올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하위 20% 가구의 명목소득은 전년 대비 7.6% 낮아진 반면 상위 20% 소득은 10.3%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고용쇼크 충격에 소득분배 악화라는 더 큰 파도가 덮친 격이다.

전후 사정을 감안할 때 통계청장 경질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신임 청장은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부문 통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인물이다. 정권이 원하는 통계를 생산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통계는 가장 중요한 국가 인프라다. 통계가 정치의 도구여서는 안 된다. 2000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재정적자 규모를 축소한 그리스는 분식이 발각되면서 ‘문명국가’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권의 정책 독선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나타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최근의 고용쇼크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인구구조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당연히 반론이 제기된다. 장 실장 주장대로 생산인구 감소가 이유라면 구직자 간 경쟁이 줄어 취업이 용이해져야 한다. 하지만 7월 구직단념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6만2000명 늘었고 고용률도 0.2% 미세하게 감소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을 빼고 소득주도성장을 끌고 갈 추가적 수단은 거의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그리고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상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해 충돌의 문제로 여의치 않다. 그래서인지 최저임금 인상을 너무 쉽게 봤다. 정치권, 노조, 노동 약자가 연합하면 자영업자의 저항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정치위원회’였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기업소득환류세제도 가계소득을 두둑하게 해 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같은 연장선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맥락이 다르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기업이 ‘이윤을 사내유보하지 않고 배당하거나 임금으로 지급하고 투자재원으로 쓴다면’ 법인세 부담을 낮춰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된 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전혀 다르다. 최저임금을 29% 인상했다고 부가가치가 그만큼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어딘가에 분배해 줄 돈이 숨겨져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곧 나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국민은 새 정부에 기회를 줬고 기다렸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을 실험할 수 있었다.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책의 정합성’을 성찰해야 한다. 정책의 독선과 오만을 버려야 정상적인 정책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