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려되는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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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지식사회부 기자 cosmos@hankyung.com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연일 법원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5일에도 기자들에게 “법원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민사재판 불법개입 등을 수사하기 위해 곽모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전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 판사 등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당했다고 털어놨다.
한 차장검사의 이런 반응은 수긍이 간다. 지난 6월 수사를 시작한 이후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이 십중팔구 기각되고 있으니 난감해할 만하다. 일반적인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은 5.2%다. 검찰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이번 수사는 김명수 대법원장 결단으로 시작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설치하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 수사를 용인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6월15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법원에 대한 수사를 직접 의뢰하지는 않겠지만 시민단체 등의 고발과 고소에 따른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그러면서 “재판은 실체적으로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가 강조해온 오랜 덕목”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 거래’를 확인하려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공정해 보이겠다는 애초의 목적과 취지가 충분히 살아나고 있다고 생각할까. 세간의 평가는 냉정하기만 하다. 법원 안에서도 “이러려면 아예 자체 해결을 도모하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압수수색 영장도 제대로 안 나오는 사건인데 실제 재판은 볼 것도 없다는 반응도 있다. 검찰이 사건 실체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했다는 우려는 둘째치고 재판부의 팔도 안으로 굽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당사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공정해 보이겠다”는 김 대법원장 뜻은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