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과 나와봐야 취업 안 된다"… 학부생 4명 중 1명이 전공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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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채 흔들리는 조선업 생태계‘조선업 엑소더스(대탈출)’의 실상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의 바뀐 전과(轉科) 규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학과는 지난해 10월부터 학과를 옮기려면 최소 한 학기 전에 지도교수와 상담하고 학과 사무실에 전과 의사를 미리 통보하도록 했다. 전공수업 이수 학점과 성적 기준 등 까다로운 규정을 둬 쉽게 전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학과 이탈자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이 대학 조선해양공학과에서는 한 해 입학정원(46명)의 4분의 1 수준인 10여 명이 전공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가로 번진 조선업 불황
서울대 올 지역균형 정원 미달
전과 희망자 급증하자 인원 제한
전국 취업률도 '50% 벽' 붕괴
미래경쟁력 상실 우려
'조선 빅3' 영업익 8년새 97%↓
석·박사급 인력 양성 늦어지면
업황 살아나도 대응 어려워져
조선업 장기 침체로 학부생부터 석·박사급 연구개발(R&D)자, 관리·생산직 근로자까지 인력 유출이 심해지면서 조선업 경쟁력이 갈수록 약해진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선업 침체→인력 유출→경쟁력 약화→수주 부진’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다.조선업 외면하는 젊은 인재들
1946년 서울대 설립과 함께 ‘항공조선학과’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는 70여 년간 2700여 명의 조선 전문 인력을 키워낸 ‘한국 조선업 인재의 산실’로 꼽힌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과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등 국내 조선 ‘빅3’ 중 두 곳의 최고경영자(CEO)가 이 학과를 나왔다. 하지만 2015년부터 이어진 조선업 침체 여파로 취업문이 좁아진 데다 임금 하락과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기피학과로 전락했다.
조선업 기피현상은 서울대 입학을 꿈꾸는 수험생의 선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학년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지역균형선발전형 경쟁률은 0.67 대 1로 정원에 미달했다. 같은 해 수시모집 일반전형 경쟁률은 4.12 대 1로, 조선업이 호황이던 2008년의 8.46 대 1과 비교해 크게 낮아졌다. 정시모집 경쟁률도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 조선학과 졸업생의 취업난도 심해지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전국 19개 주요 대학의 조선 관련 학과 취업률은 2011년 75%에서 2015년 59%로 떨어졌다. 2016년엔 45%에 그치며 처음으로 취업률 50%의 벽이 무너졌다. 빅3를 포함해 중대형 조선회사들이 올 상반기 채용한 인원(경력직 포함)은 110명에 불과했다. 3071명을 뽑았던 2015년 상반기에 비해 96.4% 감소했다.
조선업 몰락한 일본 전철 밟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가 일본 도쿄대 선박공학과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80년대까지 세계 조선업 인력 양성을 주도했던 도쿄대 선박공학과는 일본 조선업 쇠퇴 여파로 1998년 학과명에서 ‘선박’을 떼고 환경해양공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이 1997년 연간 조선 수주 실적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제친 지 1년 만이다. 이후 일본 조선업은 한 번도 한국을 뛰어넘지 못했다.일본을 따라잡고 순항하던 한국 조선업도 20여 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등에 밀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세계 1위 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수주 부진에 따른 일감 부족으로 군산조선소 문을 닫은 데 이어 지난달부터 울산 해양플랜트 공장 가동도 중단했다. 국내 조선 빅3가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2234억원으로 2010년(8조5024억원)에 비해 97.3% 급감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올해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고임금 탓에 선박 발주가 나와도 중국과 인건비가 싼 동남아시아 국가 근로자를 활용하는 싱가포르 조선사에 밀리기 일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고비용·저효율 구조로는 선박 발주가 늘어나도 국내 조선업계가 과거와 같은 호황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재 이탈은 조선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이경호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친환경 선박과 자율운항 선박 등 차세대 선박산업이 확대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분야를 전공한 석·박사급 인재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고급 설계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해 놓지 않으면 조선업 경기가 살아났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없다”(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IT학과 교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현주/김보형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