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도착 두 시간 만에 김정은 만나… 靑 "분위기 나쁘지 않았다"

특사단 당일치기 訪北

특사단 '평양 담판'…문재인 대통령 친서 전달

남북정상회담 일정 등 조율
김정은 파격 제안 내놨을 수도

폼페이오 방북 재추진 가능성
연내 종전선언 논의 급물살 기대도
< 화기애애 >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수석 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뒷줄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왼쪽부터), 서훈 국정원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 우리 측 특사단. 맨 오른쪽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청와대 제공
5일 밤 10시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특별기에서 내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표정은 밝았다. 정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수석특사 자격으로 이날 당일치기로 북한을 다녀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방북 성과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김정은 파격 제안 가능성이날 특사단은 지난 3월 1차 방북 때보다 훨씬 큰 부담을 안고 평양으로 향했다. 6·12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선(先)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선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과의 갈등이 깊어진 상태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지난달 방북이 전격 취소될 정도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사단은 이번 방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해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출발 직전까지도 김정은과의 면담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한 ‘시계 제로’ 방북이었다.

하지만 특사단이 이날 김정은과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비핵화 논의 및 미·북 관계 전환과 관련해 긍정적인 의견 교환이 오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사단은 이달 평양에서 열기로 한 남북한 정상회담의 구체적 일정과 의제,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통한 남북 관계 진전 방안,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착 달성 방안 등 세 가지 테마를 집중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친서를 통해 김정은에게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 한반도 비핵화 및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의 당위성을 전달했다.특히 김정은이 특사단에 핵 시설과 핵무기, 미사일 시험장 등의 신고와 관련해 종전보다 더욱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종전선언과 대북제재와 관련해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금 양보한다면 북한이 예상보다 좀 더 나아간 비핵화 시행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친서에 남북 경제협력 부활과 관련한 의견을 제시했을 것으로 관측된다”고 전했다. 실제 북한은 지난 7월부터 줄기차게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우리 정부에 요구해왔다.

특사단, 미·북 간 간접회담 중재특사단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서로 ‘거품과 환상’이 꺼져버린 미국과 북한 사이를 잇는 중간 다리 역할을 맡았다. 이날 특사단은 미국 측과 사전협의를 통해 북측에 던질 새로운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전했다. 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받아든 정 실장은 다시 조만간 미국을 방문, 방북 결과를 직접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사단을 통해 미·북이 간접회담을 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이다.

특사단이 올 3월처럼 방북 성과를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정세 관련 주요국에 보고하고 미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조기에 재추진될 전망이다. 이 경우 2차 미·북 정상회담과 함께 연내 종전선언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대북 특사단이 남북 관계의 독자성을 발휘해 미·북 대화를 추동하는 창의적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특사 방북을 통해 북한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에 근거해 미·북 대화를 촉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北 “종전 선언, 의지만 있으면 가능”

북한은 종전선언 채택을 재차 강력히 요구했다. 북한 외무성은 특사단 방북 전날인 지난 4일 홈페이지 ‘공식 입장’ 코너에 김용국 외무성 산하 군축 및 평화연구소장 명의로 ‘조선반도(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은 시대의 절박한 요구’란 소논문을 올렸다.

외무성은 이 글에서 “조·미(북·미) 사이의 신뢰 조성에서는 무엇보다도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발현으로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첫 공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당사국들의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종전선언을 채택해 전쟁 상태부터 끝장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아울러 “종전선언 문제는 판문점 북남 수뇌회담과 조·미 수뇌회담의 정신에 비춰볼 때 이미 결실을 봤어야 할 문제”라며 “미국은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진정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일단 대화라는 물이 있는 우물가로 북한과 미국을 데려가는 게 우리 정부의 역할”이라며 “물을 마시는 건 북한과 미국 양측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