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여 다양한 목소리 들어… 그리스 비극축제는 민주주의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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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문명은 도시와 문자의 조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도시는 개인이 혈연과 지연을 넘어서는 타인들과 동거하며 타협하는 장소다. 문자는 상대방 심지어는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공동의 상징체계다. 그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기로 한 약속이다. 도시와 문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을 하나로 묶는 끈이 문자다. 도시와 문자가 문명을 구성하는 두 가지 조건이라면, 경청은 문명의 유전자(DNA)다.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17) 경청(傾聽)
소통의 기본조건 '경청'
상대방 말을 무시하지 않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수용
잘 듣는 사람이 위대한 리더
헌신적 모습 보인 테세우스
오이디푸스와 진솔한 대화
그를 보호의 대상으로 삼아
납치 당한 두 딸을 구출해줘
아들 외면하는 오이디푸스
아버지 추방시킨 폴리네이케스
동생과의 권력다툼에서 밀리자
신탁 듣고 도움 구하러 찾아와
경청은 드물다. 다른 사람이 말을 마칠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려 주는 것은 경청이 아니다. 우리는, 특히 리더라는 감투를 쓴 인간들은 경청은 고사하고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면박을 주기 일쑤다. 우리는 대부분 그냥 준비 없이 듣는다. 우리는 귀로 사방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듣는 행위를 영어로 ‘히어링(hearing)’이라고 한다.경청(傾聽)
우리는 타인의 말 중 자신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구축해온 주파수에 맞는 것만 듣는다. 그 주파수에 맞지 않으면 흘려보낸다. 만일 당신이 오늘 하루 동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즉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 혹은 부모, 혹은 딸이나 아들이 하는 말을 듣기를 시도해 보라. 정말 ‘잘 듣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금방 깨달을 것이다. 부부 관계,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자식과의 관계, 더 나아가 자신의 직장 동료 및 상사들과의 관계는 ‘잘 들으려는 시도’만으로 급격히 개선된다.
인간관계의 기반은 경청이다. 경청은 말하고 있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말이란 말하는 발화자의 오랜 생각과 습관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수화자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수화자가 상대방의 말을 기꺼이 듣겠다고 결정한다면, 그 말하는 내용을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역지사지는 경청의 핵심이다.영어 단어 ‘리스닝(listening)’은 히어링과는 다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높은 단계는 외국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리스닝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한 대상이 필요해 항상 전치사 ‘투(to)’가 따라온다. 그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대화에 귀뿐만 아니라 마음도 집중해야 한다. 이런 행위가 리스닝이다. 멋진 연설이 아니라 경청이 위대한 리더를 만든다. 경청하는 사람은 믿음직하고 존경을 받는다.
그리스 비극 축제는 경청의 연습이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아테네에 구축하려는 새로운 정치 형태인 ‘민주주의’의 근간이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마음이라고 확신했다. 아테네 원형경기장에 앉아 있는 시민들은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말하는 배우들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 소포클레스는 자신의 비극 작품들에서 일상의 대화보다 훨씬 장황한 내용을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준다. 관객은 비극 공연을 관람하면서, 자신을 잊고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기 시작한다. 경청은 타인에 대한 이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 이해는 다시 자신이 그 대상에게 가졌던 선입견과 편견을 허문다.
경건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인륜을 거역하는 행위를 한, 도시의 오염이자 터부인 오이디푸스와 대화를 나눈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다. 테세우스가 그의 말을 경청하고 나자, 오이디푸스는 터부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테세우스가 오이디푸스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납치된 그의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크레온의 손에서 구출해 데리고 오는 것이다.
테세우스는 경호원들과 함께 달려가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구출한다. 안티고네는 아직 이 소식을 모르고 슬픔에 빠져 있는 아버지 오이디푸스에게 다가와 말한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를 아버지에게 데려다주신 더없이 고귀한 이분을 아버지께서 보는 것을 신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1099~1102행)
오이디푸스에게는 두 종류의 지팡이가 있다. 하나는 땅을 더듬는 지팡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인도하는 두 딸이다.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 두 딸과 재회한다.테세우스가 이웃 도시국가 테베의 공주들을 구출해 다시 아테네로 데려온 사건은 두 도시 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중한 행동이었다. 이런 영웅적인 행위를 한 테세우스는 어떤 사람인가? 오이디푸스는 그에게서 다른 인간에게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세 가지 품성을 발견했다. ‘경건함’과 ‘올곧음’, 그리고 ‘거짓 없는 말’이다. 경건함이란 우주의 이치와 삶의 도리를 깨닫고, 그것을 준수하려는 노력이다. 올곧음은 철저한 자기 점검을 통해 자신에게 온전하고 남에게도 정직한 마음이다. 거짓 없는 말이란 타인을 속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말한 내용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언행일치의 말이다.
행동
테세우스의 헌신적이며 이타적인 행위는 그의 삶의 철학에서 나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인생을 빛나게 하고 싶습니다.”(1143~1144행)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의 말이나 글이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이뤄진다. 며칠 전 TV에서 6개월마다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 결핵환자들을 치유하는 스티븐 린튼(한국명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의 활동을 감동적으로 봤다. 그는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미국 선교사의 아들로, 미국인이란 신분을 활용해 북한으로 들어가 결핵환자를 치료하는 데 인생을 바치고 있다. 그는 직접 의약품을 들고 들어가 결핵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그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마치 부모나 친구처럼 다가가서 그들의 말을 경청한다. 결핵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그들의 가래를 용기에 담고, 이를 가져와서 분석해 치료약을 만든다.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이런 일을 하세요?” 그가 서슴지 않고 말했다. “이들은 내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인간을 빛나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위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를 만나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 제단에서 탄원하고 있는 사람을 목격한다. 바로 오이디푸스를 찾아오는 그의 아들 폴리네이케스다. 오이디푸스는 폴리네이케스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오이디푸스를 테베에서 추방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아버지의 완고한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오이디푸스가 폴리네이케스를 만나는 것이 아버지의 도리라고 주장한다. 테세우스는 무대에서 경호원들과 퇴장하고, 이내 저 멀리서 누군가 홀로 등장한다. 폴리네이케스다. 그는 멀리 서 있는 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다가오고 있다.
장남 폴리네이케스
폴리네이케스는 끔찍한 상태의 아버지를 보고 말한다. “아아, 어떻게 할까? 누이들아, 먼저 내 자신의 불행을 위해 울까? 아니면 여기 계시는 늙은 아버지의 불행을 위해서 울까? (…) 입고 계신 옷에는 옷만큼이나 오래된 더러운 때가 눌어붙어 살갗을 상하게 하고, 눈도 없는 머리에는 빗질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구나!”(1254~1262행)
폴리네이케스는 자신이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추방시켰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자신의 처지를 탄원한다. 오이디푸스가 테베에서 추방된 후 맏아들인 폴리네이케스와 둘째 아들인 에테오클레스는 번갈아 테베를 통치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에테오클레스는 권좌에 올랐을 때 형을 추방했다.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라는 도시로 가서 전투를 잘하기로 유명한 장수 6명과 함께 테베 성을 함락시키기로 한다.
폴리네이케스는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왜 찾아왔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저를 내쫓고 조국을 빼앗은 제 아우 에테오클레스를 응징하러 가는 길입니다. 부디 저에 대한 화를 풀어주십시오. 신탁은 아버지께서 편드시는 쪽이 이길 것이라고 말합니다.”(1328~1332행)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인륜을 거슬렀지만, 폴리네이케스는 권력을 위해 의도적으로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추방시켰다. 그는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자신이 동생을 살해하고 테베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신탁을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찾은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꺼져라. 이 악당 중의 악당아. (…) 나에게 배척받고 아버지도 없이, 너는 친족(동생 에테오클레스)의 손에 죽고, 너를 내쫓은 자(에테오클레스)도 죽을 것이다.”(1382~1388행)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