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버핏이 한국의 경제 각료라면 어떤 정책 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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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나라 안팎으로 정세가 복잡하다. 끝이 없는 미·중 간 무역마찰, 신흥국 금융위기 조짐, 남북한 관계 교착, 소득주도성장 논쟁,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동산 대책 등. 미국에서는 어려울수록 정치·군사·외교 현안은 헨리 키신저, 경제 현안은 워런 버핏에게 혜안을 구한다고 한다.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구루 등 버핏을 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박애주의자라는 용어가 자주 들린다. 3년 전 평생 모은 재산의 4분의 3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올해 기부액만 하더라도 3조8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내 사회적 약자 배려정신을 확산시키는 데 일등공신이다.한국 경제가 당면한 현안에 대해 버핏의 혜안이 절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많은 성장과 분배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느냐에 대한 버핏의 선택은 전자다.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인 등 경제주체가 자본주의 정신과 시장경제 장점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한 계층 간 소득불균형은 세제정책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초점이 다르다. 고소득층으로부터 걷은 세금을 저소득층에게 단순히 이전시키기보다는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세제혜택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래야 근로의욕이 꺾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버핏의 시각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소득주도성장은 상대소득가설(F 모딜리아니, J S 듀젠베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높아 세율 인상 등을 통해 고소득층 소득을 저소득층에게 이전시키면 소비가 증가해 성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버핏의 시각은 미국 경제정책에 깊숙이 배어 있다. 미국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성장국면을 구가하고 있다. 핵심 성장 동력은 기업 등 경제주체를 중시하는 정책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했던 ‘리쇼어링’ 정책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더 강화해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지우기에 일관하고 있는 트럼프 정책과는 대조적이다.
리쇼어링의 핵심 수단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다. 특히 법인세는 35%에서 21%로 기업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대폭 내렸다. 미래 국부를 책임질 4차 산업혁명의 경우 정부가 간섭을 안 하는 ‘규제 프리 존’을 설정해 전폭 지원해 주고 있다. 소비의 주체인 개인에게도 원칙은 일자리 창출과 근로의욕 고취다.경제정책 차이는 고스란히 결과로 연결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지난 2분기 성장률(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미국은 4.2%, 한국은 2.5%다. 1980년 2차 오일 쇼크,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한국과 미국 간 성장률이 역전된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 경제 ‘조로화’와 ‘중진국 함정’ 우려가 함께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버핏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근로자에게 필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윤추구라는 기업 생존의 본질상 생산성과 직업의 특성을 외면한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 근로자일수록 일자리 상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버핏의 이런 주장을 통계적으로 입증해주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은 16.4% 인상됐다. 최근 5년간 평균 인상폭 7.4%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지만 올해 1분기와 2분기 저소득층 소득(하위 20% 계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8%와 7.6% 감소했다. 저소득층 일자리 상실이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강남 집값과 대책에 대한 시각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차이가 있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원칙론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이다. 차이가 나는 것은 부유세 부과다. 버핏은 집값이 올라간 만큼 부유세는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인 데 반해 장 실장(강남 거주)은 ‘미온적’ 혹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이 많다.
버핏이 우리 경제 각료보다 반드시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경제정책은 지향하는 목표와 처한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가 하나다.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기본 토대는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신흥국일수록 금융위기 조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