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영원히 지속될 수 없어… 은행, 경기 하강에 대비해야"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인터뷰 - 마틴 그룬버그 前 미국 FDIC 의장

'금융위기 소방수'의 진단

은행 자기자본 축소는 2008년 위기 교훈 잊는 것
금융위기 재발하더라도 공적자금 투입해선 안돼
마틴 그룬버그 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65·사진)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 가운데 하나로 “은행은 늘 경기 하강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세미나 후 기자와 만나 “경기 회복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언제 경제 위기가 와도 버틸 수 있도록 은행들이 자기자본을 충분히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룬버그 전 의장은 이어 “2008년처럼 금융위기가 재발하더라도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을 구제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FDIC 부의장으로 ‘소방수’ 역할을 했다. 2012년 11월부터 5년간 FDIC 의장을 지냈고 지금도 FDIC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FDIC는 연방통화감독청(OCC), 미국 중앙은행(Fed)과 함께 미국의 3대 금융규제 기구다.

그룬버그 전 의장은 “미국 경제가 지금 사상 두 번째로 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경기 회복이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미국 경제가 조만간 하강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은 금융 시스템 유지에 중요한 은행들은 언제가 됐든 경기 하강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때 금융 시스템의 혼란을 막고 다음번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자기자본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에서) 미국 금융당국이 최근 대형 은행의 자기자본 요건을 완화하려고 하는 건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을 잊어버린 행동”이라고 비판했다.미국 금융권에선 대형 은행의 자기자본 요건 완화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OCC와 Fed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 규제를 강화했다. 2014년 JP모간체이스,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8개 글로벌 대형 은행그룹(G-SIB·시스템적 중요 은행)의 자기자본 요건을 크게 높인 게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자기자본(기본자본+보완자본) 가운데 위험자산 대비 대손충당금 등 보완자본 요건을 상향 조정했다. 최소 3%이던 것을 8개 대형 은행그룹의 지주사는 최소 5%로, 이들 금융그룹의 예금보장 계열사는 최소 6%로 조정했다.

하지만 미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이 비율을 다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완자본 비율을 은행별 위험자산에 따라 차등화한다는 방침이다. 자기자본 요건이 너무 높으면 은행이 ‘위험 대출’을 꺼린다는 이유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에 따른 것이다.이와 관련해 폴 볼커 전 Fed 의장, 폴 오닐 전 조지 W 부시 행정부 재무장관,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직접 겪은 인사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룬버그 전 의장도 “자기자본 요건을 완화하면 해당 은행의 계열사와 주주들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형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과 경기 하강 시 대출 여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은행의 부도 위험도 커질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는 “미 금융당국의 제안대로 자기자본 요건이 완화되면 8개 대형은행 그룹의 자본확충 부담이 종전보다 20% 정도, 금액 기준으로는 총 1210억달러(약 135조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룬버그 전 의장은 ‘강화된 자기자본 요건 때문에 은행들이 위험대출을 꺼린다’는 지적에 대해선 “자기자본 요건이 강화된 뒤에도 은행 대출은 오히려 늘었다”며 “2014~2017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3%인 데 반해 이 기간 8개 대형은행 그룹의 대출 증가율은 18%였다”고 반박했다.‘금융위기가 재발하면 정부가 은행에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노(no)”라고 잘라 말했다.

그룬버그 전 의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정부가) 은행 파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제금융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금융위기 때와 달리 정리의향서(living will) 같은 제도가 도입돼 은행 파산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돼 있다”며 “정부가 나서 구제금융을 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