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압박 후 '코드 훈장'… 이석태 헌재 재판관 후보자 훈장 또 논란

후보에도 못 올랐는데…법무부의 변협 압박 후 추가돼
'박재승 전 민변 회장 훈장' 요구는 거절한 변협
법무부 "강요한 적 없다" 해명

변협 추천 1순위 후보 대신
3순위 이석태에 '무궁화장'

공심위 심사도 안 거치고
법무부가 13명 추려 제출

대면심사 원칙도 깨고
서면회의로 수훈자 확정

김도읍 국회 법사위 자유한국당 간사 주장
법무부 "정부 재량권 법적 보장" 반박
정부가 이석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게 지난 4월25일 ‘법의날’ 국민훈장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수여하는 과정에서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고, 관련 규정 위반 소지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보자는 당초 변협의 무궁화장 추천 후보 명단에 없었다가 정부 압박 후 추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2003~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맡았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10일 열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변협은 무궁화장 추천 후보로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을 1순위로, 우창록 변호사를 2순위로 추천했다. 우 변호사가 결격 사유로 훈장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하 전 회장으로 굳어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법무부 관계자가 변협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하 전 회장은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추천하라”고 요구하면서 판이 흔들렸다. 법무부 관계자는 "복수 추천을 해달라고 전화한 것이지 '하 전 회장은 안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변협은 지난 3월 정부 요구대로 두 명을 더 추천했다. 윤호일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와 이 후보자를 각각 2~3순위로 추천한 것이다. 변협 관계자는 “정부가 훈장 추천에 압력을 가한 것”이라면서도 “이 후보자를 넣어 달라고 직접 요구한 것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가 박재승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추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변협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석태 구하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이 후보자에게 훈장을 주는 과정에서 상훈법과 정부포상업무지침 등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훈법 제5조에 따르면 서훈을 추천할 때 반드시 공적심사위원회(공심위)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지난 3월30일 26명의 정부포상 및 장관표창 후보자 가운데 15명을 ‘직접’ 뽑았고 ‘사후적으로’ 공심위에 제출했다. 당초 법무부 인권국이 공심위에 낸 15명 명단엔 하 전 회장과 윤 대표변호사가 포함됐다. 하지만 법무부 혁신행정담당관실에서 “무궁화장을 그동안 1명만 추천했는데 왜 3명을 하나. 단수로 다시 추천하라”고 인권국에 지시하자 1순위(하 전 회장)와 2순위(윤 대표변호사)가 탈락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떨어진 13명은 대부분 범죄경력이 있는 등 결격사유가 있거나 문재인 정부 국정기조에 맞지 않는 후보들"이라며 "서훈 절차에서 정부의 재량권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와관련 "26명을 13명으로 추린 것에 대한 법적 근거를 대라"고 법무부에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내 로펌 한 대표변호사는 “상훈법상 ‘공심위를 거쳐야 한다’는 표현은 ‘사후적 통보’가 아니라 ‘실질적인 심사’를 의미한다”며 “법무부가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4일 공심위는 정부포상업무지침상 ‘대면회의’ 원칙도 지키지 않고 서면회의로 대체한 후 일사천리로 최종 수훈자를 확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서면회의도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초기단계에서부터 공심위의 심사없이 자의적으로 수훈자를 추렸고, 최종 공심위원회도 서면으로 대체돼 실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며 “절차상 문제가 발견된 만큼 국정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한 원로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로 규정한 박근혜 정부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