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상파 방송사 CBS를 이끈 방송계 거물 레슬리 문베스(68) 최고경영자(CEO)가 거듭된 성폭력 의혹에 결국 낙마했다.문베스는 9일(현지시간) CEO와 이사회 의장, 회장 자리에서 모두 물러난다고 CBS가 성명을 통해 밝혔다.
2006년 CEO에 취임한 문베스는 20년 넘게 CBS의 성공을 주도한 중심 인물이었지만, 과거 다수의 여성을 성추행 또는 성희롱했다는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보도가 나온 이후 사측의 조사를 받아왔다.
문베스의 사임 소식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뉴요커의 추가 보도 직후에 전해졌다.뉴요커는 이날자 기사에서 6명의 여성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문베스로부터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추가 성폭력 보도에는 강제 성관계는 물론 문베스가 자신의 신체를 노출하고, 물리적 폭력과 협박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포함돼 있다.
이들 피해자는 모두 실명으로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이에 대해 문베스는 뉴요커에 보낸 성명에서 "이 기사에 실린 끔찍한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며 "진실은 내가 CBS에 오기 전인 25년여 전 이 여성들 중 3명과 합의된 관계를 한 것이며, 난 여성의 커리어와 발전을 방해하는 데 내 지위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CBS는 "우리 이사회는 이 혐의들에 대해 철저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약속했으며, 현재 조사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며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뉴요커의 보도가 나온 지 수 시간 후 CBS 이사회는 문베스의 사임을 발표하는 성명을 냈다.CBS는 지난 7월 뉴요커의 첫 보도 이후 이사회 내에 독립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법률회사를 고용해 문베스의 성폭력 의혹에 관한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문베스는 약 1억 달러(약 1천127억 원)로 추산되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이번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일단 빈손으로 물러나게 됐다.
CBS는 문베스가 퇴직금 중 2천만 달러(약 225억 원)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지원하는 단체들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문베스가 거액의 퇴직금을 챙길 수 있다는 보도에 여성단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직장 내 성폭력에 반대하는 단체 '타임스 업'(Time's Up)은 성명을 내고 "CBS는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우리는 조사 결과의 완벽한 투명성, 진정한 변화 약속, 레스 문베스에게 대한 무(無)보상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5년부터 CBS에 몸담은 문베스는 2006년 CE0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쇠퇴해가던 TV·라디오 방송국을 디지털 플랫폼의 성공적인 프로그램 제공자로 변신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문베스의 빈자리는 조 이아닐로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임시로 맡는다.한편, CBS 이사회는 이날 문베스 CEO 사임과 함께 지배주주 샤리 레드스톤과 모기업 내셔널 어뮤즈먼트에 대한 소송을 종결키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