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역구 의원 허가해야 특수학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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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서 지식사회부 기자 koo@hankyung.com“학생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10일 서울교육청에서 열린 조희연 교육감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한 말이다. 지난 4일 조 교육감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강서을)이 강서특수학교(가칭 ‘서진학교’) 설립 합의문을 발표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이 항의 기자회견을 열면서 마련된 자리다.앞서 서울교육청은 인근 학교 통폐합으로 빈 땅이 생기면 한방병원 건립을 위해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학부모들은 “교육권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권리”라며 “이번 합의는 특수학교를 거래나 허락의 대상으로 낙인 찍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항의했다.
일각에서는 ‘일부 주민이 반대하는 만큼 지역구 의원이 나서서 합의를 이끌어 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김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사안이라도 주민이 문제를 제기하면 지역의 국회의원으로서 중재할 수밖에 없다”며 “철딱서니 없는 어떤 분이 ‘좋은 선례’니 ‘나쁜 선례’니 입방아를 찧어 댄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서진학교 설립 계획은 2013년 시작됐다. 강서구 특수학교의 학급당 과밀현상, 구로구 특수학교로의 원거리 통학 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교육청은 옛 공진초 자리에 새 특수학교를 짓겠다고 행정예고했다. 일부 주민들이 반대 의견을 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김 의원은 중재 대신 2015년 10월 주민설명회를 열고 “옛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하고 나섰다. 지난해 9월5일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호소’를 하면서 “김 의원님, 나가지 마시고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친 이유다.
지난달 착공한 서진학교는 서울에서 17년 만에 지어지는 특수학교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8개 자치구에는 아직 특수학교가 없다. 서울교육청은 2020년 개교를 목표로 중랑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부지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김남연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이번 합의를 묵과하면 특수학교를 지을 때마다 교육감이 지역구 의원에게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 학부모들은 다음주께 김 의원을 항의 방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