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김기창 '복덕방'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요즘에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가면 ‘복덕방’이란 간판을 내걸고 부동산을 중개하는 곳이 간혹 눈에 띈다. 복(福)과 덕(德)을 가져다준다는 ‘복덕방(福德房)’은 원래 마을의 뒤풀이 장소였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제사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모이다 보니 집안 대소사나 주택매매, 이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방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주택을 매매하고 이사를 주선하는 사업장이 됐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1953년 작 ‘복덕방’은 당시 부동산 유통 문화를 마치 회고담처럼 들려주는 작품이다. 부동산 매매를 주선하는 주인과 여성 손님, 긴 의자에 앉은 노인 뒤로 집들을 절묘하게 배치했다. 일상적 생활 광경을 담아낸 풍속도 화풍에 역점을 두면서도 굵은 선으로 면을 분할하는 기하학적 구도를 중시했다. 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늙은이를 등장시켜 저물어가는 삶을 익살스럽게 반영했다.어린 시절 병으로 청각과 언어 장애를 얻은 운보는 이당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웠다. 젊은 시절 채색화 시기를 거쳐 1960년대 추상화, 1970년대 민화풍의 ‘바보산수’, 1980년대 ‘청록산수’ 등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창의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1975년 한국은행의 요청으로 1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세종대왕 초상을 그려 주목받았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