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이미 결정난 위헌심판제청 취소시켰다

행정처 동원해 내부망서 은폐 조치…검찰, 직권남용죄 적용 방침
'재판개입 의혹' 이민걸·김현석 부장판사 내일 소환
양승태(70) 전 대법원장이 일선 법원 재판부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취소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실제로 해당 재판부는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했고, 법원행정처는 내부 전산망에서 사건 관련 기록을 감추는 등 재판에 개입한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결정을 취소시켜라"는 취지로 지시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검찰 수사를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원의 재판 일정을 뒤로 미루도록 하는 등 절차에 개입한 정황은 여럿 드러났지만, 이미 결정문까지 써 놓은 일선 재판부의 결정을 뒤집은 정황이 포착된 것은 처음이다.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015년 서울남부지법 재판부가 위헌심판제청 결정을 내리자 법원행정처 간부가 재판장에게 결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재판부는 한 사립 의과대학 교수가 공중보건의 복무기간을 교직원 재직기간에 합산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재직기간 계산 관련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판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제청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미 당사자에게 결정 사실이 통보된 상황에서 법원행정처의 연락을 받고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했다.재판장은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해 결정을 취소한 데 대한 불만이 있는지 확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는 이 과정에서 전산정보국을 동원해 내부 전산망에서 결정문이 열람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해당 결정을 내렸다가 취소한 재판장을 소환 조사해 이 같은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검찰 관계자는 "진행 중인 재판에 개입한 게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정을 불법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재판부의 결정 취지는 한정위헌 여부를 헌재가 가려 달라는 것이었다.

한정위헌은 법률을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한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재 결정의 한 형태다.

헌재가 일선 법원의 제청을 받아들여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 사법부 내에 판례로 통용되던 특정한 법률 해석이 위헌적이라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헌재와 갈등을 빚어왔다.

검찰은 한정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애초 재판부 결정의 취지에 불만을 가진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취지로 다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검찰은 당시 결정 취소가 재판부 판단에 명백히 반해 이뤄졌다고 보고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검찰은 12일 오전 이민걸(57)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김현석(52) 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고법 부장판사급 고위 법관들을 잇따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이 부장판사는 2015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임종헌 당시 차장과 함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민사소송을 법관 해외파견 등과 맞바꾸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 모임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연구회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데 관여한 의혹도 있다.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던 2016년 6월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를 검토하는 내용의 문건을 법원행정처로부터 건네받아 유해용(52) 당시 수석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한 의혹을 받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