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본 학습효과'로 무역전쟁 타격 크게 받지 않을 것"
입력
수정
노무라 권영선 "'플라자합의 후유증' 반면교사 삼아 경제정책 신중 운용"
터키·아르헨티나 등 신흥시장 위기, 각국 전염 가능성 낮게 봐
"한국, 수출경쟁력 유지 위한 세제·임금 정책 펼쳐야" 조언미국과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학습한 중국은 이에 잘 대처할 것이라는 진단이 저명한 금융 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일본 노무라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권영선 전무는 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무역전쟁 후 미국 증시의 강세와 이에 대비되는 중국 증시의 약세 등에 근거를 둔 중국 경제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실물경제 지표와 중국 당국의 대응 등을 살펴볼 때 이러한 비관론은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월의 연중 고점보다 25% 이상 떨어졌으며, 선전거래소 선전성분지수는 사정이 더 나빠 1월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하지만 무역전쟁에도 중국의 수출은 호조를 보이며, 중국 당국도 부채감축 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는 등 무역전쟁에 면밀하게 대응하고 있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권 전무는 지적했다.특히 중국 당국이 1980년대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른 일본의 사례를 치밀하게 연구해 놓았으며, 이러한 간접적인 '학습효과' 덕분에 일본의 전철을 피할 수 있는 정책 역량이 크게 높아졌다고 그는 강조했다.
1980년대 일본이 대미교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자 미국은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일본에 대대적인 무역 공세를 펼쳤고, 일본은 엔화 강세를 용인한 1985년 플라자합의로 사실상 미국에 항복했다.
일본은 엔화 절상 충격을 완화하고자 금리를 대폭 인하하는 통화완화 정책을 사용했지만, 이는 결국 일본 경제 전반에 버블을 만들었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가져왔다.권 전무는 "중국은 일본 당국의 이러한 '과잉 정책대응'이 장기 불황을 초래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통화·금융정책을 신중하게 운용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권 전무는 최근 아르헨티나, 터키 등에서 발생한 경제위기가 세계 각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낮게 봤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후 재정·통화정책을 보수적으로 운영해 경제 펀더멘털을 개선한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의 재발 우려를 염두에 두고 위기 대응능력을 키운 것이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얘기다.권 전무는 "신속대출제도를 도입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통화 스와프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각국 금융당국 등은 위기예방에 온 힘을 쏟고 있다"며 "다만 염려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 부상이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지정학적 갈등 등 각국의 글로벌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홍콩, 한국 등의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형성됐고 그 거품이 붕괴할 것이라는 일부의 견해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은행권이 대출을 남발하고 무리한 자금조달에 의존했던 1990년대 초 거품경제 시기 일본과 달리 중국, 홍콩, 한국 등의 은행들은 대출 관리에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에 이상 징후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일자리 문제 악화, 조선업 구조조정 등으로 몸살을 앓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최악'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이는 고도성장기에는 모든 경제 참여자가 만족하는 '최선'의 경제정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특정한 부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부문을 다소 희생시키는 '차악'의 정책을 선택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고언이다.
권 전무는 "조선업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조 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이것이 조선업 경쟁력을 지속해서 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차라리 신성장 산업 육성에 이러한 자금을 투입했다면 일자리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막대한 대외자산을 축적한 미국, 일본 등과 달리 우리의 대외자산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며, 미래세대가 쓸 대외자산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세제나 임금 등 기업 비용으로 전가돼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 전무는 15년간 한국은행에서 정책·조사 업무를 담당한 후 리먼브러더스를 거쳐 2008년 노무라증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수석 이코노미스트로서 동아시아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전망 및 분석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1925년 설립돼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노무라증권은 서울, 홍콩, 뉴욕, 런던 등 세계 30여 곳에 진출했으며, 자본금 27조원에 3만여 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연합뉴스
터키·아르헨티나 등 신흥시장 위기, 각국 전염 가능성 낮게 봐
"한국, 수출경쟁력 유지 위한 세제·임금 정책 펼쳐야" 조언미국과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학습한 중국은 이에 잘 대처할 것이라는 진단이 저명한 금융 전문가에 의해 제기됐다.일본 노무라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권영선 전무는 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무역전쟁 후 미국 증시의 강세와 이에 대비되는 중국 증시의 약세 등에 근거를 둔 중국 경제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실물경제 지표와 중국 당국의 대응 등을 살펴볼 때 이러한 비관론은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월의 연중 고점보다 25% 이상 떨어졌으며, 선전거래소 선전성분지수는 사정이 더 나빠 1월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하지만 무역전쟁에도 중국의 수출은 호조를 보이며, 중국 당국도 부채감축 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는 등 무역전쟁에 면밀하게 대응하고 있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권 전무는 지적했다.특히 중국 당국이 1980년대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른 일본의 사례를 치밀하게 연구해 놓았으며, 이러한 간접적인 '학습효과' 덕분에 일본의 전철을 피할 수 있는 정책 역량이 크게 높아졌다고 그는 강조했다.
1980년대 일본이 대미교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자 미국은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일본에 대대적인 무역 공세를 펼쳤고, 일본은 엔화 강세를 용인한 1985년 플라자합의로 사실상 미국에 항복했다.
일본은 엔화 절상 충격을 완화하고자 금리를 대폭 인하하는 통화완화 정책을 사용했지만, 이는 결국 일본 경제 전반에 버블을 만들었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을 가져왔다.권 전무는 "중국은 일본 당국의 이러한 '과잉 정책대응'이 장기 불황을 초래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통화·금융정책을 신중하게 운용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권 전무는 최근 아르헨티나, 터키 등에서 발생한 경제위기가 세계 각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낮게 봤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후 재정·통화정책을 보수적으로 운영해 경제 펀더멘털을 개선한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의 재발 우려를 염두에 두고 위기 대응능력을 키운 것이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얘기다.권 전무는 "신속대출제도를 도입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통화 스와프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각국 금융당국 등은 위기예방에 온 힘을 쏟고 있다"며 "다만 염려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 부상이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지정학적 갈등 등 각국의 글로벌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홍콩, 한국 등의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형성됐고 그 거품이 붕괴할 것이라는 일부의 견해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은행권이 대출을 남발하고 무리한 자금조달에 의존했던 1990년대 초 거품경제 시기 일본과 달리 중국, 홍콩, 한국 등의 은행들은 대출 관리에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에 이상 징후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일자리 문제 악화, 조선업 구조조정 등으로 몸살을 앓는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최악'이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이는 고도성장기에는 모든 경제 참여자가 만족하는 '최선'의 경제정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특정한 부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부문을 다소 희생시키는 '차악'의 정책을 선택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고언이다.
권 전무는 "조선업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조 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이것이 조선업 경쟁력을 지속해서 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차라리 신성장 산업 육성에 이러한 자금을 투입했다면 일자리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막대한 대외자산을 축적한 미국, 일본 등과 달리 우리의 대외자산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며, 미래세대가 쓸 대외자산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세제나 임금 등 기업 비용으로 전가돼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 전무는 15년간 한국은행에서 정책·조사 업무를 담당한 후 리먼브러더스를 거쳐 2008년 노무라증권으로 자리를 옮겼고, 수석 이코노미스트로서 동아시아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전망 및 분석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1925년 설립돼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노무라증권은 서울, 홍콩, 뉴욕, 런던 등 세계 30여 곳에 진출했으며, 자본금 27조원에 3만여 명의 임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