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서울지식재산센터] #8 기술보호지원단의 지식재산이야기

배&김 특허, 배형상 변리사
중소기업의 소프트웨어 유출 방지 조치에 대하여(실제 사례를 통해 알아본 점검 사항)

전력 공급 장비 대여 업체인 A사는 관련 장비를 해외 업체들로부터 들여와 국내 기업들에 대여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해외 업체들은 자신들이 가진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운송 일정마저도 지연되기 일쑤여서 국내 고객사들로부터 불만이 매우 높았다.이에, A사는 자체 개발을 목표로 기술 부서를 꾸린다면, 관련 장비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A사는 비록 해외 업체들에게는 을의 입장이었지만, 국내에서는 나름 탄탄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던 터라,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국산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A사는 경영진의 결단으로 험난한 국산화의 길을 걷기로 하였다.

분석 결과, 이 장비는 비교적 흔한 부품들인 발전기, 리액터, 히터, 냉각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들을 안정적으로 구동 및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국산화의 걸림돌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A사는 먼저 지역 내 소프트웨어 업체를 물색하였으나 녹록치가 않았다. 결국 전국적인 수소문 끝에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업체를 찾을 수 있었고, 이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발전기 출력전압, 입력 전류, 리액터 온도 등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여기에는 1년여의 개발 기간과 수억원에 이르는 개발 비용이 소요되었다.

기존에 해외 기업들에 의해 독점되어 왔던 관련 장비의 국산화에 성공하자, 국내 수요 기업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국산화의 결과로, 대당 가격의 상당 폭 저하는 물론, 물류 비용과 운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어, 수요 기업들에게도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 장비의 특성상, 적용 대상에 따라 장비를 미리 변경하거나 맞춤 제작을 요하였고, 납품 전에는 반드시 시험 가동을 통과해야 하였으므로, A사 내에 이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에 A사는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인력만이 해당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수 있도록 관리하였다. 물론, 소프트웨어에 접근 또는 실행을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해두었다.

수년간 매우 성공적인 실적을 쌓아가고 있을 무렵, 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 B가 이 프로그램을 몰래 카피한 후 퇴사하여 동종 업체를 신설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A사는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였다.

알고 보니, B는 A사를 퇴사하기 한참 전부터 친척 명의로 동종 회사를 설립하였고 이미 A사가 수주할 건들은 그쪽으로 빼돌려 왔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게다가, A사의 주요 고객사들의 담당자를 상당 수 포섭한 정황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확실히 입증해 줄 증인이나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B는 퇴사 즉시 A사가 참여하는 입찰에 경쟁 업체로 참여하였고, 그럴 때마다 A사와 동급 장비를 제조 및 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였다. 또한, B가 수요 업체들 앞에서 시연한 바에 따르면 A사의 장비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A사는 개발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해당 소프트웨어를 카피해 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을 하였다. 이에 반해, B는 다른 프로그램 제작 업체를 통해 단기간에 운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다는 주장을 하였다.

A사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우선, B가 사용 중인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였고, 나아가 B가 A사의 소프트웨어를 카피, 즉 탈취/유출하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B의 소프트웨어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하고, 이것이 A사 소프트웨어를 카피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였다.

A사는 수년전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로 등록해 두었는데 이것이 현 상황에서 큰 힘이 되었다. 즉, 정황상으로는 카피, 유출한 것으로 보여 지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반드시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였던 경찰에게,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 등록증은 압수수색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일단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되었으나, B의 행방을 찾는 것부터 벽에 부딪혔다. 경찰이 B의 집 앞에서 잠복하기를 수 일이 지나도록 B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A사도 백방으로 B의 행방을 수소문하였고, 우여 곡절 끝에 B의 행방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B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그의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압수할 수 있었고, 여기서 B가 스스로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소프트웨어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고, 법정 분쟁이 시작되었다.

B의 프로그램을 확보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과 달리, 막상 프로그램을 열어보니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B가 A사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눈가림을 해놓은 것이다.

B의 소프트웨어는 외견상으로 보아서는 A사의 소프트웨어와 달라보였다. 우선, 코딩 언어가 상이하였고, 일대일로 매칭되지 않는 부분도 존재하였다. B측 법률 대리인은 이러한 점을 들어 B의 프로그램은 A사의 프로그램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일견 설득력있는 주장으로 보였고, A사의 카피 주장은 큰 힘을 받지 못하였다. 결국 법원은 전문인 감정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A사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보유하지 못했으므로, 두 프로그램이 실제로 동일한지 여부를 A사로서도 속 시원히 판단할 수 없었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찾아가 문의해 보아도 내용이 복잡하고 모호하기도 하여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그들은 해당 기술 자체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다, 소프트웨어를 일일이 뜯어보아야 하는 작업은 거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수준의 노력이 든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새로이 투입하지 않고서는 두 프로그램의 동일, 유사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사정을 간곡히 호소하였음에도, 법원은 사건이 지연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전문인 감정 절차를 강행하기로 하였다. 법원은 양 당사자로부터 전문인 신청 명단의 제출을 명하였고, 그 결과 B측 명단에 있었던 모 대학의 프로그램 관련 학과에 재직 중인 C교수를 이 사건의 전문인으로 선정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A사가 알아본 결과, C교수는 프로그램 코딩 전문가이긴 하지만 전력 공급 장치 관련 기술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었고, 따라서 양 프로그램이 상이하다고 할 개연성이 높아 보였다. 기술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두 프로그램이 달리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전반적인 시각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A사는 C교수가 감정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을 법원에 주장하는 한편, 실제 적임자를 필사적으로 물색하던 중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바로, 애초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였던 D업체와 연락이 닿게 된 것이다. 그간, 연락을 시도할 때마다 통화가 되지 않았던 D업체는 그 사이 종합 컨설팅 업체로 탈바꿈하면서 회사명과 주소 등이 변경되었던 것이다. D업체야 말로 소프트웨어 자체는 물론이고, 관련 기술에 관해서도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기에 감정의 적임자였다. 다행히 D업체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필요한 검토 작업을 해 주겠노라고 선뜻 응하였다. 법원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법원은 C교수의 감정 이전에 D업체의 소견서를 먼저 제출받아 보겠다는 의견을 드러내었다. 다만, 한 달 정도의 시간 내에 소견서를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A사는 D업체를 매일같이 독려하였고, 본격적으로 두 프로그램의 비교가 시작되었다.

D업체의 심층 검토결과는 전문적인 것은 물론이고, 한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B의 프로그램은 A사의 것에 코딩 언어를 달리한 것에 불과하고,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나열 순서를 뒤섞어 놓은 것일 뿐 실질적으로 동일한 작업을 수행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임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확실한 결론을 내고도 비전문가인 법원을 설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법원은 A사와 D업체 사이를 특수 관계라고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B측의 그러한 주장이 상당 부분 법원을 움직인 측면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B측은 여세를 몰아 외견상의 상이함을 근거로 우기기로 일관하여 법원을 현혹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결국 D업체의 제대로 된 검토 결과에도 불구하고, 법원을 확신시키지 못하는 상태로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러한 공방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A사는 D업체에게 추가 검토를 멈추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러한 정성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D업체는 결국 완벽한 카피의 증거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D업체가 해당 프로그램을 코딩할 때 실수로 들어간 무의미한 라이브러리 뭉치들이었다. B의 프로그램의 곳곳에 동일한 라이브러리 뭉치들이 그대로 카피되어 있는 것이었다. 비록 프로그램 언어는 상이하였지만, 그 내용은 완벽하게 일치하였다.

이와 같은 결정적인 증거를 이용하여 법정에서 B를 압박하니, B(및 B가 이용한 소프트웨어 업체)가 카피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B가 이용한 소프트웨어 업체는 D업체의 프로그래머를 매수하여 위와 같은 위장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실로 치밀하게 계획된 기술 유출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상과 같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 A사의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었던 결정적 기술 유출 사건이 해결될 수 있었다. B에게는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고, 그의 전 재산은 가압류되었다. 향후 이어질 민사 소송에서는 손해배상의 청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소프트웨어는 관리도 어렵지만, 유출된 이후의 입증은 더더욱 까다롭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관리가 중요한 회사들이라면 다음 사항을 재점검 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평소 복제를 방지할 수 있는 조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둘째,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 등록을 하였는가?

셋째, 복제에 대비한 허수(dummy) 라인들을 워터마크처럼 심어 두었는가?

이상은 위의 실제 사례를 통해 경험한 것이므로, 기본적인 조치들로서 새겨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외에도, 회사마다 자체적인 유출 방지 방안을 개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외에, 경찰, 검찰, 또는 법원 등 각급 단계에서 소프트웨어와 기술지식을 두루 갖춘 전문가 집단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도 요구할만한 일이다. 위 사례에서는 당사자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그럴만한 여력을 갖춘 것은 아닐 것이다.글= 배&김 특허 배형상 변리사

정리= 경규민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