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리 금리 발언에 한은 당혹… "경기·물가 종합 고려"

'척하면 척' 악몽 되살아나나…채권시장도 화들짝
이낙연 국무총리의 금리 발언에 한국은행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가뜩이나 복잡한 통화정책 스텝이 한층 꼬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13일 "금리에 관해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기준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부동산과 가계부채뿐 아니라 경기와 물가 상황 등을 종합 고려해서 신중히 결정한다는 말씀을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금리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질의에 "(금리 인상에 대해)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그는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자금 유출이나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에 따른 문제, 가계부채 부담 증가도 생길 수 있고 현재와 같은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고민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최근 서울 지역 부동산시장 과열, 가계부채 증가에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발언일 뿐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한은 금통위의 고유권한인 기준금리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읽힌다.

통화정책과 관련한 한은 독립성 논란은 잊을만하면 불거지고 있다.지난해에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금리 발언이 논란이 됐다.

8·2부동산 대책이 나오고 며칠 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채권시장이 흔들렸고 국정감사 때도 문제가 됐다.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준금리 문제는 한은 고유권한이며 정부 당국자가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며 수습했다.김 부총리는 이날도 이 총리가 원칙적인 얘길 했을 뿐일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에는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에게 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며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또 논란을 빚었다.
정부 당국자의 금리 발언은 금융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날도 이 총리 발언이 나오자 금융시장에선 꺼져가던 금리 인상 기대감이 살아나는 모양새다.

채권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날 보합으로 출발한 3년 만기 국고채는 이 총리의 금리 발언이 나온 뒤 상승, 오후 장에선 전날보다 4∼5bp(1bp=0.01%포인트) 오른 수준이다.

한은은 이미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둔 상태다.

7월과 8월 금통위에서 두 차례 금리 인상 소수의견이 나왔다.

금통위원 한 명만 더 동참하면 금리 인상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10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릴 경우 정부 방침에 따라 움직였다는 논란이 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2014년 최경환 전 부총리의 '척하면 척' 발언의 악몽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이번 정부 대책으로도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자칫 한은을 향해 책임론이 나올 우려도 있다.

현재 고용과 물가지표 등에 드러나는 국내 경기를 보면 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작년보다 둔화하며 금리 인상 근거가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 총리가 과열된 서울 지역 부동산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과잉 대응이라는 반론도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 부동산시장은 미지근하고 구조조정으로 타격을 받은 지역까지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렸다가 지역 경제에 얼음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금통위에선 사실상 동결을 선언한 위원도 등장했다.

전날 신인석 위원은 "금리조정 과정은 물가상승률이 확대돼가는 것을 '확인해가며'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금융시장 한 관계자는 "한은은 이미 사면초가 상황이었는데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