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사망 '형제복지원' 29년 만에 재심리

검찰개혁위, 총장에 '비상상고' 권고…"유죄 판결땐 정부가 수백억 배상해야"

"무죄근거인 정부 훈령은 위헌"
부랑자 선도 명목 무고자 감금
1975년부터 12년간 513명 사망
최악 인권 '한국판 홀로코스트'

당시 수사검사 김용원 변호사
"불법감금 피해자 2만~3만명 될 것"

판결따라 손배청구 줄이을 듯
법조계 "1인 최대 2억 달할 듯"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며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기록된 ‘형제복지원 사건’이 30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당시 무죄 판결 났던 부분이 유죄로 바뀔 경우 국가가 배상해야 할 금액은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법조계는 전망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는 형제복지원 감금 사건에 대해 ‘비상상고’ 신청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위원회는 또 “당시 검찰권 남용과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9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경DB
이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정부가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북구 형제복지원에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킨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학대와 폭행, 암매장 등 인권유린이 벌어졌고 12년간 공식 사망자만 513명에 달했다. 1987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김용원 검사(현 법무법인 한별 대표변호사)가 처음 수사에 착수했고 검찰은 그해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을 불법감금 등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정부(내무부) 훈령에 따른 것이었다며 무죄로 판단하고 횡령죄만 유죄로 인정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지난 2월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김용원 변호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형제복지원 정원이 310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12년간 피해자 규모는 2만~3만 명일 것”이라며 “당시 형제복지원과 비슷한 수용소가 20여 곳이었다는 점에서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김용원 변호사
문 총장은 진행 중인 형제복지원에 대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비상상고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문 총장이 비상상고를 결정하면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에 의한 격리 수용을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한 과거 판결이 잘못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첫 재판(1987년) 이후 31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1989년)이 나온 후 29년 만에 대법원 재심리가 이뤄지는 셈이다.

검찰개혁위원회는 “내무부 훈령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데도 법률적 근거가 없어 헌법상 ‘법률유보의 원칙’을 위반했고, 단속 대상이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했으며, 수용자의 진술 기회를 박탈해 ‘적법절차원칙’을 위반했다”고 밝혔다.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잇따를 경우 국가 배상이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법조계는 전망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소송을 이끈 홍지백 변호사는 “1970~1980년대 급여체계에 따라 일용 노동자의 기대수명까지의 소득(일실 수익)과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감안하면 1인당 최대 1억~2억원 수준까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배상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7월 발의된 형제복지원 진상규명과 피해자보상을 위한 법안은 3년째 국회 계류 중이다.

김 대표변호사는 “여야 간 ‘정치적 뒷거래’로 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법원의 손해배상권 인정 여부와 소멸시효 문제가 남아 있어 아직 국가 배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날 위원회는 한국경제신문이 지적한 국가송무시스템 문제와 관련한 대책 마련도 법무부와 대검에 권고했다.▶본지 7월28일자 A1, 5면 참조

위원회는 “국가송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검찰의 국가송무 기능을 법무부로 이관해 일원화하며, 제3의 국가송무 전담기관을 신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지적했다.

■비상상고형사사건 판결이 확정된 이후 사건의 심리가 법령에 위반된 것을 발견했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비상구제절차다. 검찰총장 고유 권한으로 최근 5년간 10여 건이 제기됐으나 대부분 과잉 처벌에 관한 것이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