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상'의 손예진… 善의 편에 서서 惡을 대변하는 연기 경험 '짜릿'
입력
수정
지면A24
"냉정한 협상가 내면의“협상가는 경찰 측에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인질범과 훨씬 더 가깝대요. 인질범의 내면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면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게 된다는 거죠. 그렇게 협상이 이뤄지는 것이고요.”
뜨거운 인간애 보여주려 노력
현빈과 모니터 통해
대사 주고받으며 촬영
처음엔 앞이 캄캄했죠"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협상’에서 서울경찰청 위기협상팀 소속 협상가 하채윤 역을 맡은 손예진은 이렇게 말했다. 협상가는 선(善)의 편에 서 있지만 인질들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악(惡)의 대변인, 인질범의 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영화 속 하채윤은 경찰청장의 호출에 영문도 모른 채 경찰 상황실로 불려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테이블에 놓인 것은 덜렁 모니터 하나뿐. 태국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민태구(현빈 분)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친다. 하채윤은 모니터를 통해 민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협상을 진행한다.
한국 영화 최초로 협상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손예진은 협상가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준다. 민태구의 도발에 한순간 감정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고 협상을 끌어간다. 손예진은 “인질범에게 ‘너의 어떤 이야기도 다 들어주겠다’는 모습과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널 통제할 수 있다’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야 해 어려웠다”고 말했다.“하채윤이 얼마나 뜨거운 인간애를 갖고 있느냐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그는 협상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인간적인 인물입니다. 경찰이나 협상가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느낌, 무조건 정의만 외치거나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매력이 없잖아요. 그 접점을 찾으려고 했어요.”
극 중 모니터를 통해 협상이 이뤄지는 것처럼 실제로도 비슷한 기법으로 촬영했다. 영상통화를 하는 것처럼 이쪽에서 카메라에 대고 말하면 저쪽에서 모니터로 보면서 대사를 받아치는 실시간 이원촬영 방식이다. 손예진은 생소한 방식에 “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상대 배우의) 실제 목소리나 호흡에서 느껴지는 떨림, 눈빛의 미묘함이 모니터로 다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예민했어요. 세트장에 들어가는 게 싫어지기도 했다니까요. 몸도 쓰면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앉아서 얼굴로만 연기하는 거잖아요.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곳은 감옥이다. 촬영이 다 끝나야지만 여기를 나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심리적 압박이 심했죠.”손예진은 긴 머리가 협상가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바꿨다. 이 때문에 개봉은 ‘협상’보다 빨랐지만 촬영은 나중이었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머리를 붙이고 촬영했다.
“누구도 자르라고 하진 않았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오겠다 싶었죠. 외형적인 변화가 주는 영향이 크니까요. 영화 속 이야기는 12시간 동안 벌어지는 것이라 촬영하는 한 달 반 동안 머리를 계속 다듬어야 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편이거든요.”
손예진 특유의 반달모양 눈웃음이 더욱 예뻐 보였다. 손예진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이어 ‘협상’까지 올해에만 세 편의 작품을 해냈다.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있느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말했다.“항상 있죠. ‘쟤 또 나와? 지겹다’ 이럴까봐 무서운 거예요. 그래도 세 작품 속 캐릭터가 다 달라서 다행입니다. 변신하려 한다기보다 다른 캐릭터를 하는 걸 좋아해요. 어떻게 보면 겁이 없는 거죠.” 손예진은 소리 내어 작게 웃었다.
손예진은 배우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수록 관객들이 보는 모습은 더 풍성해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힘들어도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번 역할은 그런 고민의 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어요.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꼈으니까요.”
김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