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3000여명 사는 나진, 밤에도 환해… '혁신' 적힌 현수막까지

꿈틀대는 한반도 북방경제
(5·끝) '마지막 퍼즐' 북한의 선택

민간 연구진 나진 방북기

돈 돌고 경제 활력 '천지개벽'
私農 등장하고 장마당 커져
택시 흔해…교통위반 단속도

중·러 관광객 등 年 3만명
나진에 개혁개방 새 바람

나진항, 제재에 빈사상태
석탄 분진 자욱하던 항구
화물·인적 뚝 끊겨 을씨년
비핵화→경협 시급함 '웅변'
북한은 오랫동안 중유 등 에너지원을 외부에 의존해 왔다. 두만강역의 철로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와 연결돼 있으며, 나진항으로 각종 물자를 공급한다. 북한 두만강역에 유조열차가 나란히 정차해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제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열차는 약 7시간을 달려 하산역에 도착했다. 327㎞의 길은 산 하나 없는 평원과 구릉의 연속이었다. 이제 두만강 대교만 건너면 북한 땅이다.

민간 연구진의 하산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5년 4월 처음 대면한 하산역은 통관 부스도 없는 시골 간이역 수준이었다. 약 3년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다. 부스 세 개를 갖춰놓고 국제공항에 버금가는 최신식 통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1시간가량의 통관 검사를 마친 특별열차는 다시 경적을 울리며 북한의 두만강역으로 진입했다. 하산역에서 두만강역까지는 불과 15분이다.두만강역도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3년 전엔 없던 중국제 화물검사용 엑스레이 기기가 역사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북한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나선경제특구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 관광객이 1년에 3만 명 정도 나선시를 방문한다”고 했다. 나선시에 상주하는 외국인도 3000명을 웃돈다고 한다.

두만강역에서 나진시까지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비포장도로이긴 했지만 평탄하게 닦여 있어 1시간가량이면 선봉을 거쳐 나진시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 풍경은 3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산 밑에 사각형 형태로 다닥다닥 붙어 있던 낡은 집단주택은 말끔하게 정돈됐다. 수십 명이 떼를 이뤄 집단노동을 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대신에 농부 2~3명이 김을 매고, 고랑을 정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농(私農)의 등장을 짐작하게 하는 풍경이다.

나진시에 등장한 외국인 전용 책방.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제공
황량하기만 했던 나진시 역시 도시로서의 틀을 갖춰가고 있었다. 거리엔 택시가 쉼 없이 오갔다. 북한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떼이는 중국인 운전자도 목격할 수 있었다. 버스 차창 너머로 본 금요일 오후의 나진시는 중국의 여느 지방 도시와 비슷해 보였다. 장마당엔 상점이 꽤 들어섰고, 식당 앞엔 1990년대 초 러시아를 연상시키는 소규모 행상들이 제법 모습을 갖추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장마당에 모인 이들은 족히 500명은 돼 보였다. 3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이었다. 돈이 돌면서 경제가 살아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나진시의 야경은 더욱 놀라웠다. 지난번 방문 때만 해도 나진은 칠흑 같은 어두움에 싸인 도시였다.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현수막에만 조명이 비치는 정도였다. 국제 제재로 인한 전기 부족으로 오후 8시 이후에는 단전이 빈번했던 3년 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현수막 속 구호들은 방문객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붉은 글씨로 쓰인 ‘혁신’이라는 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회주의 체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자본주의 용어’다.

2016년에 벌어진 미·북 간 일촉즉발의 대치와 연이어 추가된 제재 국면에서도 나진은 경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국제 제재가 적용되는 국가 인프라 시설 외에 국경을 오가는 중·러와의 민간 경제교류가 이런 변화를 만든 동력이다. 두만강역에서 본 상당량의 유조열차들이 나진의 전력을 지켜주는 ‘구원투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중·러의 기업인과 관광객이 나선경제특구에 돈을 뿌리고, 그 돈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였다면 이런 투자금이 북한 수뇌부나 군부로 흘러갔을 것이다.하지만 나진항은 국제 제재로 인한 충격이 커 보였다. 3년 전만 해도 항만에 석탄이 가득 차고 지저분한 분진이 날리는 공간이었는데 이번에 본 나진항은 ‘멈춤’에 가까웠다. 화물이 별로 없어 보였고, 인적도 드물었다. 나진항을 운영하는 북·러 합작 기업인 나선콘트란스 사장의 고백이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해 준다. 그는 “화물을 처리하지 못해 회사 운영이 어렵다”며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다.

나진시의 사례로 북한 전체를 바라봐선 안 될 것이다. 지역적으로 제한된, 접경지대의 특별한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다. 국제 제재 속에서도 특구 형태로 북한 내부와 분리된 이른바 ‘모기장식 개발’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 있다는 점이다. 나진항을 통해 한국의 물류지도가 중·러로 뻗어 나갈 수 있길 꿈꿔 본다.정리=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지난달 중순 나진특별시를 방문한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물류연구본부장(사진)의 전언을 재구성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