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천경자 '초원'

한경과 맛있는 만남
2015년 8월 작고한 천경자 화백은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 1960~1980년대 국내 화단에서 여성 화가로는 드물게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초창기 자신의 드라마 같은 삶으로부터 소재를 길어 올렸던 그는 1969년 타히티를 시작으로 28년 동안 유럽, 미국, 아프리카, 인도 등을 돌며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닌 해외 창작여행 덕분에 원색의 순수미에 눈을 떴고 내면에 잠재된 욕구를 시각화했다.

1978년 제작한 ‘초원Ⅱ’는 시각적인 쾌감과 함께 맺힘이 없는 자유로운 영감, 원색의 배합이 두드러진 수작이다. 아프리카 초원을 거니는 야생동물, 수풀 사이로 보이는 꽃, 나체의 여인을 화려한 색채미학으로 아울렀다. 코끼리 등에 엎드려 고개 숙이고 누워 있는 나체의 여인은 한없이 외롭고 고독했던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여인의 고독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 등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국내 애호가가 소장해온 이 작품은 19일 K옥션의 가을 경매에서 20억원부터 입찰을 시작한다. 2009년 9월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이 그림이 새로운 주인을 찾으면 천 화백 작품 최고가인 17억원(‘정원’)을 단번에 넘어선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