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이은 신흥국 위기 강 건너 불 아니다

"美 금리인상에 신흥국 '긴축발작'
韓 제조업 위기 속 정책실패 겹쳐
외화유동성 확충 등 방책 쌓아야"

오정근 <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연율 4.2%를 기록했다. 이로써 미국은 9월, 12월 두 차례 금리인상이 확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과거 금융위기가 미국 금리인상 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1984년 남미 외환위기는 2차 석유파동에 따른 미국 금리인상 후,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는 1994~1995년 미국 금리인상 후,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4~2007년 미국 금리인상 후에 발생했다. 저금리 시절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신흥시장국으로 유입됐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가져올 환차익을 기대하고 일제히 유출로 반전되면서 위기를 촉발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강고해지면서 2015년 12월부터 시작된 미국 금리인상의 빈도와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어 우려된다.

이미 상당수 신흥시장국들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아르헨티나는 페소화 급락으로 기준금리를 연 60%까지 올리고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는데도 위기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 홍콩은 홍콩달러 가치가 급락해 고정환율제가 위협받자 긴급히 외환시장에 개입했고, 미국과 통상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 역시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다음달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를 ‘취약 5개국’으로 지목하기도 했다.‘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이 거론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은 10여 년 주기로 반복되는 글로벌 경기 사이클과 관련 있다. 불황 시 경기부양을 위해 공급된 글로벌 유동성이 수익성 높은 신흥시장국으로 흘러들어가 호황과 거품을 만들어 낸다. 경기 과열조짐이 보이면 주요 선진국들의 긴축통화정책으로 인해 신흥시장국에 유입됐던 글로벌 유동성이 유출로 급반전, 신흥시장국은 외화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1984년 남미 외환위기,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10여 년 시차를 두고 일어났는데 최근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양적 긴축을 계기로 일부 신흥시장국들이 위기국면에 진입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미국, 일본, 유럽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급락한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덜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펼쳐 원화가치가 경쟁국에 비해 고평가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2012년 초 100엔당 1500원이던 원·엔 환율은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인해 2015년 5월 900원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강성노조 파업, 임금 급등세까지 겹치면서 2016년 반도체 호황 직전까지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제조업 위기가 초래돼 미국 일본의 제조업 부활과는 반대현상을 보여줬다. 설상가상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 정책 실패로 회복하는 세계 경제와는 디커플링(탈동조화)하는 모습도 보여 우려를 더 크게 하고 있다.

이미 동남아 국가까지 전염된 위기가 한국에까지 확산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잘못하면 경기침체에 금융위기, 재정위기까지 겹치는 대(大)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에 대비해 외화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에 이르지만 외채가 4400억달러, 외국인 주식투자액이 5200억달러 규모여서 위기가 급속히 전염될 경우 힘에 부칠 수도 있다. 위기 시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 즉 한·일, 한·미 통화스와프가 중요하다. 한·미 금리차이에 따른 환차손 우려에 주식투자손실 충격까지 더해지지 않도록 투자환경 개선을 통한 내수활성화를 꾀해야 한다. 위기 발생 시에는 구제금융 등 재정수요가 급작스럽게 늘어나 국가부채가 급증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에도 남다른 신경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