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北, 경제 발전시킬 준비는 돼 있나

홍영식 논설위원
한 재일동포 기업인이 수년 전 들려준 대북 투자 실패담은 북한의 해외 자본 유치 시도가 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잘 말해준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치하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고, 농기계 제작 사업으로 성공했다. 1980년대 중반 북한이 합영법을 발표하자 북한에 트랙터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세웠다.

그는 “당국이 생산 대수, 가격 등을 일일이 통제하는 바람에 제대로 경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주문이 들쭉날쭉해 시설을 놀리는 날도 많았다. 갈수록 적자가 쌓였고, 결국 1992년 빈손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노동당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 기업 자율성은 없었고, 근로자들은 자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공산주의 체제의 민낯을 봤다”고 했다.경직된 체제가 투자 가로막아

북한은 1960년대 후반 자력갱생을 기치로 한 ‘주체경제노선’을 천명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기술과 자본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자력갱생은 구호에 그쳤다. 북한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1985년 합영법을 내놨다. 외국 회사의 출자재산과 이윤 등을 보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재일동포 기업인들만 투자했을 뿐 다른 외국 자본은 한 군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노동당이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에다 인프라가 열악해 외국 자본이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북한은 경제특구로 눈을 돌렸다. 1991년 나진·선봉 지역을 시작으로 신의주, 황금평 등을 특구로 지정했지만 실패했다. 중국은 ‘점(點)-선(線)-면(面)’이라는 단계적 방식을 통해 개방을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확고한 비전이 있었다. ‘점’으로만 떨어진 북한의 ‘모기장식 개방’ 계획은 외국 투자를 유인하는 데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그럼에도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며 도(道)마다 하나씩 경제개발특구 지정을 지시했다. 올 들어선 경제개발에 대한 의지를 더욱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월 경제우선 신정책 노선을 채택했고, 9·9절에서는 경제가 국가 정책의 중심 과제임을 밝혔다. 김정은은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을 베트남처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체제 전환 없는 경제발전은 한계

관건은 북한이 그럴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진전돼 대북 제재가 풀린다고 하더라도 서방 기업들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갖춰져 있느냐의 문제다. 베트남만 하더라도 국유기업 민영화, 시장가격 자유화, 토지 상속권·사용권 인정 등 시장경제 요소를 대거 수용했다. 중국도 사유재산 인정, 개인·민간 경제활동 장려 등 시장경제 도입을 통한 경제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반면 북한 헌법을 보면 공산주의 경제 체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생산수단은 국가가 소유한다”고 못 박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강성 1인 독재 체제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은 역으로 독재권력의 축소를 의미한다. 김정은이 이를 감수하고 시장경제 요소를 대거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진정 경제 발전을 원한다면 외부 지원을 받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투자를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체제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대북 경협도 북한의 개혁·개방 및 시장화와 발맞춰 진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협이 자칫 북한 사회주의경제를 더 공고히 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통일이 되더라도 우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 될 것이다.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