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재용에게 "우리가 꼭 오시라 요청… 통일 위해 유명한 인물 돼달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업인들도 동행

방북 기업인들, 北 이용남 내각 부총리와 대화

이재용 "평양역 근처 건물에 과학·인재 중심 문구 인상적"
최태원 "11년 만에 보니 큰 발전"
현정은 "금강산 관광 풀렸으면…"
구광모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
최정우 "관계 개선됐으면 좋겠다"
< 기업인들, 내각 부총리와 환담 >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에 동행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첫 번째)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세 번째), 구광모 LG그룹 회장(두 번째)이 18일 북측 관계자와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4대 그룹 총수 및 주요 기업 대표들은 1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이용남 북한 경제담당 내각부총리와 남북한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경제인들은 오후 3시30분부터 이 부총리와 회담을 시작했다. 이 부총리는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이 되고 다시 한번 우리 민족끼리 마주 앉게 돼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신심(믿음)이 생긴다”며 “우리가 손잡고 지혜와 힘을 합쳐 나간다면 얼마든지 경제협력 사업에서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경협을 하기에) 최고의 기업인들이 오셨다”고 화답했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시작으로 경제인들이 돌아가며 회사 소개를 하기도 했다. 이따금 웃음이 나오는 등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은 “11년 만에 다시 (평양에) 왔는데 여러 가지 변화도 많고, 할 일도 많다”고 했다. 총수 중에서는 평양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진 구 회장이 가장 먼저 소개에 나섰다. 구 회장은 “LG는 전자, 화학, 통신 등의 사업을 하는 기업”이라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짧게 인사했다.

북측의 관심은 단연 이 부회장에게 쏠렸다. 이 부회장은 “평양역 근처 건물에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고 쓰여 있던데 삼성의 경영 철학이 ‘기술중심 인재중심’”이라며 “세계 어디에서도 한글로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이게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고 신뢰 관계를 쌓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이에 “우리 이재용 선생은 여러 가지로 아주 유명하시던데 통일을 위해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이 자리에서 북측 황호영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지도국장이 이 부회장과 악수를 나누며 “우리가 (남측과 협의 과정에서)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다”고 귓속말을 건네기도 했다. 재계 총수의 방북을 북측이 먼저 요청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경제인들 방북과 관련해 북측 요청이 있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이번 경제인 방북단 결정은 전적으로 우리 정부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최 회장은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왔는데 많이 발전한 것 같고 보기 좋았다”고 감상을 밝혔다. 경제인들은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중단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의지도 나타냈다.

김 경제보좌관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소개하자 북측 인사들은 현 회장을 모두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 회장은 “남북관계가 안 좋으면 늘 마음이 아팠고, (남북 교류를) 빨리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현대그룹은 금강산관광지구 토지이용권, 금강산관광지구 관광사업권 및 개발사업권, 개성공업지구 토지이용권, 개성공업지구 개발사업권, 개성관광사업권 등 7개 남북 경협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다.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남북관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웅 쏘카 대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 회장) 등도 방북길에 올랐다. 손 회장은 평양행 비행기에 타기 전 “CJ가 북한에 진출한다면 식품사업부터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저는 (방북이) 처음”이라며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사회간접자본(SOC) 등과 관련된 우리 기업 관계자들도 이 부총리에게 사업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한전은 남측 전기의 75%를 생산하고 있다”며 “세계 10위권의 유틸리티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개발 초기 사업에 참여한 개인적인 인연도 밝혔다.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남한 관광, 북한 관광을 따로 할 게 아니라 한반도 관광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교류가 본격화되면 저희가 평양에서 함께하는 한반도 관광 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했다.

이 밖에 이 부총리는 여성 경제인을 대표해 평양을 찾은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에게 “우리 여성들이 경제 분야에서도 아주 탄탄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면담은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이라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진 못했다. 윤 국민소통수석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 브리핑을 통해 “이번 만남은 당장 가능한 영역보다는 미래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평양공동취재단/도병욱·고재연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