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신뢰 구축 진일보" vs "비핵화는 제자리, 경협은 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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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평양 공동선언 - 전문가 분석‘9·19 평양선언’에 대한 북한 및 북핵 전문가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남북한 관계 개선이라는 측면에선 ‘역대급’이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비핵화 분야에선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조건부 영변 핵폐기(5조2항)의 내용이 평양선언문에 들어간 것은 한국 정부의 뼈아픈 실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그동안 벌여온 ‘살라미식 전술’이라 불리는 ‘동시 행동조치’에 한국 정부가 동조하고 있음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다.
北 비핵화에 쏟아지는 의문
'조건부 영변핵폐기' 조항
北 '동시행동조치' 명문화
정부 뼈아픈 실수될 것
핵·군축·경협 같은 속도로 가야
전례없는 남북한 긴장 완화
군축이 비핵화 조치 지렛대 역할
한국 역할은 중재…공은 美로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는 “이번 회담은 비핵화 부분에서 아쉬운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말했다. “이미 제조한 핵무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또다시 동창리(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설) 얘기가 나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얘기한 핵시설 등에 대한 신고와 관련해선 여전히 진도가 없다”고 지적했다.남 교수는 경제 협력 등 남북 교류와 전쟁 종식을 위한 군사분야의 합의에 대해서도 “시속 100㎞로 달리는 과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3대 의제는 모두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라며 “비핵화에 비해 나머지만 앞서 나가면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비핵화 문제는 남북 정상이 해결한 전례는 없다”며 “결국 미·북 간에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인한 미국 콜로라도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합의문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남북이 합의한 조항 곳곳에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균열을 낼 만한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김 교수는 우선 1조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를 문제 삼았다. 전쟁과 적대관계의 원인으로 북한은 한·미동맹과 미군의 존재를 꼽아왔다는 점에서다. 김 교수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적대행위 중단이 당장 미군철수, 한·미동맹의 와해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 언젠가는 반드시 의제로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했다.이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비핵화와 관련된 언급에 대해서도 “핵무장국임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북한에 시간을 벌어주고 더 나아가서는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을 약화시키는 구실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야기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동창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시설만 해도 “미국은 발사대 및 시험시설 해체를 이미 고도화된 미사일 능력의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으며, 북의 미사일 위협은 고정식 발사대보다는 이동식 발사대에서 오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비핵화 부문에서 의미 있는 진전 없이 남북관계만을 강조한 아쉬운 합의”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시설·무기에 대한 신고 및 검증 없는 살라미식 비핵화 협상을 우리 정부가 수용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향후 비핵화의 예측 가능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특히 5조 2항의 경우 북한이 그동안 요구해 온 논리가 그대로 담겼다”고 말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서로가 원한 성과가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완화를 선언문에 제일 먼저 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정부는 비핵화에 대해, 북한은 경협에 대해 거의 실익을 얻을 게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문 센터장은 “남북 정상의 좋은 만남이 미·북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문(文)의 중재외교’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군사적 신뢰 구축의 새로운 단계를 내놓은 진일보한 정상회담”이라며 “이 같은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평화 프로세스까지 진전이 이뤄진다면 종전선언까지 연결되리라 본다”고 낙관론을 폈다. 핵이라는 전략 무기를 포기해야 하는 북한 입장을 감안하면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축 조치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실현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란 견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비핵화 테마는 결국 북한과 미국이 최종 논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북 간 얘기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며 “아마 선언문으로 공개된 것보다 훨씬 많은 얘기를 했을 텐데 그걸 전부 전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우리 정부로선 최선을 다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본다”고 신중론을 폈다.
박동휘/박재원/이미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