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석 모인 대표 "블록체인 기술 적용한 해외송금 허용해야…샌드박스는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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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사업으로 국내 시장 안착"핀테크 시장에서 해외 블록체인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지만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을 묵혀두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환거래법 개정되며 블록체인 기술 활용에 제동
해외 블록체인 업체들, 핀테크 시장 지배력 강화
신기술, 신사업에 규제 샌드박스 대안될 수 있어
해외송금 전문 스타트업 '모인(MOIN)'의 서일석 대표(사진)는 "해외송금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면 송금 수수료는 내려가고, 거래시간은 더 단축되지만 송금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 기존 서비스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떼어내야 했다"고 말했다.서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해외송금 서비스를 제공해도 된다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며 "블록체인 기술 사용에 관한 규정이 답보 상태에 놓여있고, 송금업 라이선스 획득과 유지에 부적격 사유가 될 수 있어 현재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모인, 스위프트망 대신 블록체인 기술 활용…누적 투자액 32억원
서 대표는 2016년 3월 모인을 설립해 그해 10월 해외송금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캡스톤파트너스, 미국 스토롱벤처스 등 전문 벤처투자사(VC)들은 모인의 블록체인 기술, 해외송금 시장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서비스 시작도 전인 9월께 총 7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투자액만 32억원이다.모인의 송금 서비스는 기존 은행보다 값싸고, 빨랐다. 은행이 해외 송금에 이용하는 스위프트(SWIFT)망 대신 블록체인을 활용한 덕분이다. 스위프트망을 이용한 해외송금은 송금 은행→중개 은행→수취 은행을 거치면서 단계마다 수수료가 붙는다. 송금 시간은 최장 일주일이 소요된다.
서 대표는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고 수취인 계좌로 바로 돈을 보낼 수 있다"며 "스위프트망 수수료, 별도의 환율 수수료가 없어 은행보다 송금수수료가 50~90% 저렴하다. 늦어도 이틀 내에 모든 송금절차가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유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는 매 분기 100%씩 성장했다. 문제는 제도권 편입을 준비하면서 불거졌다. 작년 7월 기획재정부는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비금융사의 소액해외송금업을 허용했다.◆해외송금 시장 문 열려…라이선스 등록까지 8개월간 서비스 중단
은행이 독점했던 송금 시장에 문이 열렸지만 여전히 문턱은 높고, 문틈은 좁았다. 모인을 비롯한 해외송금업 스타트업들은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서는 자기자본 20억원 이상(소규모 전업자 10억원 이상), 부채총액비율 200% 이내, 전산전문인력, 외환전문인력 등을 충족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말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하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송금에 쓰지 말라는 당국의 가이드라인도 내려왔다.8개월간 서비스를 중단했던 모인은 라이선스를 취득해 올해 2월 서비스를 재개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송금에 사용하지 않았다.
서일석 대표는 "2016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블록체인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법률 사무소 등에서 여러 차례 자문을 받았다. 당시에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암호화폐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블록체인 기술 활용에도 제동이 걸렸다"고 했다.
현재 기재부에는 모인을 포함한 21곳이 소액해외송금업체로 등록돼 있다. 서 대표는 이 중 활발히 사업을 전개하는 업체는 8~9곳으로, 이들 업체마저도 성장성이 사업 초기만 못하다고 일침했다. 핀테크 업체들의 해외송금업을 '소액'으로 제한해 둔 탓이다.
현행 소액해외송금업체의 송금한도는 건당 3000달러, 1인당 연간 2만 달러에 불과하다. 기업고객도 같다. 시중은행은 추가 증빙을 통해 개인고객은 연간 10만 달러까지 해외송금을 할 수 있다. 기업고객은 한도 제한이 없다.
◆"스타트업, 기존 플레이어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서 대표는 "해외송금 시장을 넓히고,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기존의 플레이어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과 사업 영역에 제한을 두면 성장에 제동이 걸린 스타트업들은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신기술, 신사업에 한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인 '규제 샌드박스'가 스타트업과 핀테크 활성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산업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단계적으로, 시범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규제 샌드박스는 기술의 장단점을 시험하고, 제도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어 소비자 효용을 위한 비즈니스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모인은 중국과 일본에 한정된 송금 영역을 오는 4분기에 미국과 호주, 싱가포르로 넓힐 계획이다. 유학생, 사업자, 직구족이 대상이다.서 대표는 "동남아 시장의 해외송금업체들은 모인에 비해 업력이 10~15년 길지만 시스템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며 "송금 시간과 비용에 최적화된 메커니즘을 찾아 현지 파트너사에 인프라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