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훈의 家톡] 전원주택, 남의 눈으로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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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놈 DNA' 세상살이 큰 자산이더라그는 일반 공무원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에서 내려오자마자 잠행했다. 서울 교외 한적한 마을에 일찌감치 마련해둔 땅에 전원주택을 짓고 유유자적했다. 모든 전화번호를 지웠고 죽마고우들조차 그의 자식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과거를 그는 왜 지우려 했을까.“돌이켜보니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세상이 만든 잣대에 자로 잰 듯이 살아왔다. 모든 인연을 끊고 ‘나’로 다시 태어나 살다 가려 한다.” 마을에서는 그저 ‘김씨’로 통하는 그가 그렇게 사는 이유였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을 벗어나 전원주택에 살려면 돈키호테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신문기자 시절 전원주택 칼럼을 쓰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1990년대 중반 무렵 우연히 그를 만났다. 전원주택이 드물던 시절이라 농가주택과는 결이 다른 집을 발견한 뒤 무조건 대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네다가 정말 ‘결이 다른’ 그를 보고 그냥 팔을 잡고 붙들어 앉혔다. 말문을 열게는 했으나 그의 얘기를 칼럼으로 쓰지는 못했다. 그의 생전에는 글로 쓰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말문을 열게 할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생몰을 알지 못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혀 둔 사연을 이제는 풀어도 될 듯하다.
충남 천안에서 한참 내려간 시골에서 작은 과수원을 하던 이도 그랬다. 세탁소를 하면서 4남매를 다 키우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자식들에게 선언하고 탈속을 감행했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자식들도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의 살아온 여정이 너무나 달랐던 것에 비하면 인생의 마지막 길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길이었다. 그들은 왜 지나온 세월을 지우려 했을까.나이 60에 은퇴를 하면 적게는 500개, 많게는 1000여 개 넘는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저장되지만, 그 전화번호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는다. 그때는 그래야 했다. 그들보다 3~4년 늦었지만 그 무렵 전원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너무 깊이 세상에 발을 담근 상태라 감히 탈속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덕분에 주말마다 밀려드는 객들을 대접하느라 1년이면 돼지 서너 마리를 숯불에 흠향해야 했다. 손님 접대에 지친 집사람이 한번은 손님이 오는 날 집을 나가버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전원생활이 20년에 이르면서 깨달은 게 있다. ‘그래도 내가 인생에서 이거 하나는 건졌다’는 것.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 지금은 소나기마을(사진)로 유명해진 경기 양평의 한적한 강마을로 내려갔다.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인 초등학교를 나와 이천, 가평을 두루 거쳐 시골학교만 맴돌다가 어느덧 군대 가고 출가하게 된 아이들은 ‘아빠, 엄마에게 가장 감사한 일’로 시골에서 키워준 것을 꼽는다. 철이 드니 그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겠다고 한다. 중고교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대학생이 된 뒤부터 어느 순간 서울에서만 자란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들이 갖지 못했지만 무척 부러워하는 것, 그 다름이 바로 몸속의 ‘촌놈 DNA’였다.
◆ 시골 집짓기… '남의 눈'으로 지어라포장이사가 일반화된 요즘은 이사 가는 날이 ‘짜장면 먹는 날’이던 시절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이삿짐센터에 새집 주소만 알려주면 알아서 옮겨주는 세상이다. 그러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터전을 옮기는 것이 가장 큰 집안 대사였다. 족보를 챙기는 집에서는 본래 씨족이 살던 터를 옮겨 새로 뿌리를 내린 선조를 입향시조(入鄕始祖)라고 해 창시조(創始祖)에 버금가는 중시조(中始祖)로 모시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요즘이 그런 세월은 아니지만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옮기는 것은 포장이사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아이들을 시골에서 교육하겠다는 당찬 각오로 온 가족이 시골행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후대의 입향시조가 된다는 각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명심해야 하는 것은 전원주택을 오로지 내 마음에 드는 집으로만 지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시골 적응에 실패할 우려가 있고, 사정이 생겨서 불가피하게 도시로 유턴해야 할지도 모른다. 집을 지을 때 좀 더 보편적인 시각, 즉 남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시골에 집 짓는 일은 두 번 반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평생 한번’ 저지르는 일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꿈이 충만해진다. 그것도 정말 중요한 것보다는 집의 꾸밈새에만 온 신경이 집중돼 정작 챙겨야 할 것을 놓친다. 그 집착에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말 중요한 것,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집을 무엇으로 짓고 어떻게 꾸밀까 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얼마 전 상담한 50대 여성은 올 때마다 직접 그린 도면을 여러 장 들고 왔는데 그게 매번 바뀌었다. 밤을 새워가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에 몰두한 결과였다. ‘왜 시골에 내려와 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천식이 심해서 아파트에서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바로 앞에 숲이 있는 땅을 일단 추천했다.
그다음으로 ‘가용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도면대로 지으려면 가진 돈의 1.5배가 필요했다. 대지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방을 세 개에서 두 개로 줄였다. 천식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나머지는 다 버리라고 했다. 자주 오지도 않는 자식을 위해 빈 방을 두 개씩이나 만들 필요는 없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은 요구 사항이 단순하다. ‘내가 가진 돈이 얼마쯤 되는데, 이것만은 내 마음에 맞는 걸로 해보고 싶다’는 식이다. 주문사항이 많고 복잡한 경우는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꼭 챙겨야 할 게 ‘없거나’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 햇볕 사용법 따라 팔자가 바뀐다시골에 내려와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자주 망각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가’다. 처음 시골집을 구상할 때는 도시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반작용,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그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빠뜨리는 게 있다. 도시에서 가장 결핍을 느꼈던 것, 바로 햇볕과 바람이다. 건축 상담을 하다 보면 창문을 어디에 얼마나 크게 낼지 얘기할 때 햇볕과 바람을 얘기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은 전망을 얘기한다. 창문 프레임을 액자처럼 만들어서 밖을 보는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게 주문하는 사람은 많다. 그 창문을 통해서 받는 햇볕과 바람은 안중에 없다.
간혹 햇볕을 얘기하는 사람도 봄날의 화사한 햇볕에만 취해서 여기저기 창문을 많이 내려고 한다. 햇볕은 계절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 햇살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해는 겨울에 내려오고 여름에는 하늘 중앙으로 올라간다. 빛이 내리쬐는 각도가 다르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람을 통해 내보낼지를 잘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햇볕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일이 되기도 한다.
봄날은 간다. 겨울과 여름에도 따뜻하고 시원한 창문을 달아야 좋은 집이다. 필자도 이걸 깨치는 데 10년이 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골은 햇볕에 관한 한 무한대의 선택이 열려 있다. 그것을 집에 담는 과정이 건축이다.
20년 전 처음 목조주택을 공부하러 미국 시애틀과 포틀랜드, 캐나다 밴쿠버 등을 자주 찾았다. 집들을 둘러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급 주택 중 서향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가 가장 기피하는 좌향이다. 그 비밀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면서 풀렸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움직임에 따라 경제가 돌아가는 미국에서는 모든 시계가 동쪽에 맞춰져 있다. 뉴욕과 3시간 시차가 나는 시애틀에서는 많은 직장인이 아침 6시에 출근하고 오후 3시면 퇴근한다. 뉴욕의 ‘나인 투 식스(9 to 6)’ 시스템에 맞추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햇볕을 쬘 여유가 없으니까 퇴근할 때 가장 햇볕이 좋은 방향으로 집을 앉혔다. 서향 집이 많은 게 당연했다. 햇볕 사용법이 건축에 잘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애틀 사람들이 그렇게 햇볕에 목마른 이유는 이곳의 기후 때문이다. 겨울이 우기, 여름이 건기로 겨우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곳도 있다. 얼마 전 해외 온라인 미디어에 ‘햇볕이 우리 몸에 미치는 놀라운 효능 8가지’라는 기사가 실려서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햇볕의 놀라운 효능은 그것을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햇볕이 쏟아지는 밝은 집에서 시 한 수 가슴에 품고 살면 모두가 가슴에 칼을 품고 살아가는 듯한 이 삭막한 세상이 그래도 좀 무디어지지 않을까.
이광훈 <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
지금은 달라졌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을 벗어나 전원주택에 살려면 돈키호테 같은 용기가 필요했다. 신문기자 시절 전원주택 칼럼을 쓰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1990년대 중반 무렵 우연히 그를 만났다. 전원주택이 드물던 시절이라 농가주택과는 결이 다른 집을 발견한 뒤 무조건 대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네다가 정말 ‘결이 다른’ 그를 보고 그냥 팔을 잡고 붙들어 앉혔다. 말문을 열게는 했으나 그의 얘기를 칼럼으로 쓰지는 못했다. 그의 생전에는 글로 쓰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말문을 열게 할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생몰을 알지 못하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혀 둔 사연을 이제는 풀어도 될 듯하다.
충남 천안에서 한참 내려간 시골에서 작은 과수원을 하던 이도 그랬다. 세탁소를 하면서 4남매를 다 키우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자식들에게 선언하고 탈속을 감행했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자식들도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의 살아온 여정이 너무나 달랐던 것에 비하면 인생의 마지막 길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길이었다. 그들은 왜 지나온 세월을 지우려 했을까.나이 60에 은퇴를 하면 적게는 500개, 많게는 1000여 개 넘는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저장되지만, 그 전화번호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는다. 그때는 그래야 했다. 그들보다 3~4년 늦었지만 그 무렵 전원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너무 깊이 세상에 발을 담근 상태라 감히 탈속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덕분에 주말마다 밀려드는 객들을 대접하느라 1년이면 돼지 서너 마리를 숯불에 흠향해야 했다. 손님 접대에 지친 집사람이 한번은 손님이 오는 날 집을 나가버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전원생활이 20년에 이르면서 깨달은 게 있다. ‘그래도 내가 인생에서 이거 하나는 건졌다’는 것.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 지금은 소나기마을(사진)로 유명해진 경기 양평의 한적한 강마을로 내려갔다.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인 초등학교를 나와 이천, 가평을 두루 거쳐 시골학교만 맴돌다가 어느덧 군대 가고 출가하게 된 아이들은 ‘아빠, 엄마에게 가장 감사한 일’로 시골에서 키워준 것을 꼽는다. 철이 드니 그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겠다고 한다. 중고교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대학생이 된 뒤부터 어느 순간 서울에서만 자란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들이 갖지 못했지만 무척 부러워하는 것, 그 다름이 바로 몸속의 ‘촌놈 DNA’였다.
◆ 시골 집짓기… '남의 눈'으로 지어라포장이사가 일반화된 요즘은 이사 가는 날이 ‘짜장면 먹는 날’이던 시절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이삿짐센터에 새집 주소만 알려주면 알아서 옮겨주는 세상이다. 그러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터전을 옮기는 것이 가장 큰 집안 대사였다. 족보를 챙기는 집에서는 본래 씨족이 살던 터를 옮겨 새로 뿌리를 내린 선조를 입향시조(入鄕始祖)라고 해 창시조(創始祖)에 버금가는 중시조(中始祖)로 모시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요즘이 그런 세월은 아니지만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옮기는 것은 포장이사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아이들을 시골에서 교육하겠다는 당찬 각오로 온 가족이 시골행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후대의 입향시조가 된다는 각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명심해야 하는 것은 전원주택을 오로지 내 마음에 드는 집으로만 지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시골 적응에 실패할 우려가 있고, 사정이 생겨서 불가피하게 도시로 유턴해야 할지도 모른다. 집을 지을 때 좀 더 보편적인 시각, 즉 남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시골에 집 짓는 일은 두 번 반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평생 한번’ 저지르는 일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꿈이 충만해진다. 그것도 정말 중요한 것보다는 집의 꾸밈새에만 온 신경이 집중돼 정작 챙겨야 할 것을 놓친다. 그 집착에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말 중요한 것,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집을 무엇으로 짓고 어떻게 꾸밀까 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얼마 전 상담한 50대 여성은 올 때마다 직접 그린 도면을 여러 장 들고 왔는데 그게 매번 바뀌었다. 밤을 새워가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에 몰두한 결과였다. ‘왜 시골에 내려와 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천식이 심해서 아파트에서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바로 앞에 숲이 있는 땅을 일단 추천했다.
그다음으로 ‘가용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도면대로 지으려면 가진 돈의 1.5배가 필요했다. 대지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고 방을 세 개에서 두 개로 줄였다. 천식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나머지는 다 버리라고 했다. 자주 오지도 않는 자식을 위해 빈 방을 두 개씩이나 만들 필요는 없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은 요구 사항이 단순하다. ‘내가 가진 돈이 얼마쯤 되는데, 이것만은 내 마음에 맞는 걸로 해보고 싶다’는 식이다. 주문사항이 많고 복잡한 경우는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꼭 챙겨야 할 게 ‘없거나’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 햇볕 사용법 따라 팔자가 바뀐다시골에 내려와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자주 망각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가’다. 처음 시골집을 구상할 때는 도시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반작용,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그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빠뜨리는 게 있다. 도시에서 가장 결핍을 느꼈던 것, 바로 햇볕과 바람이다. 건축 상담을 하다 보면 창문을 어디에 얼마나 크게 낼지 얘기할 때 햇볕과 바람을 얘기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은 전망을 얘기한다. 창문 프레임을 액자처럼 만들어서 밖을 보는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게 주문하는 사람은 많다. 그 창문을 통해서 받는 햇볕과 바람은 안중에 없다.
간혹 햇볕을 얘기하는 사람도 봄날의 화사한 햇볕에만 취해서 여기저기 창문을 많이 내려고 한다. 햇볕은 계절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 햇살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해는 겨울에 내려오고 여름에는 하늘 중앙으로 올라간다. 빛이 내리쬐는 각도가 다르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람을 통해 내보낼지를 잘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햇볕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일이 되기도 한다.
봄날은 간다. 겨울과 여름에도 따뜻하고 시원한 창문을 달아야 좋은 집이다. 필자도 이걸 깨치는 데 10년이 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골은 햇볕에 관한 한 무한대의 선택이 열려 있다. 그것을 집에 담는 과정이 건축이다.
20년 전 처음 목조주택을 공부하러 미국 시애틀과 포틀랜드, 캐나다 밴쿠버 등을 자주 찾았다. 집들을 둘러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급 주택 중 서향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가 가장 기피하는 좌향이다. 그 비밀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면서 풀렸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움직임에 따라 경제가 돌아가는 미국에서는 모든 시계가 동쪽에 맞춰져 있다. 뉴욕과 3시간 시차가 나는 시애틀에서는 많은 직장인이 아침 6시에 출근하고 오후 3시면 퇴근한다. 뉴욕의 ‘나인 투 식스(9 to 6)’ 시스템에 맞추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햇볕을 쬘 여유가 없으니까 퇴근할 때 가장 햇볕이 좋은 방향으로 집을 앉혔다. 서향 집이 많은 게 당연했다. 햇볕 사용법이 건축에 잘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애틀 사람들이 그렇게 햇볕에 목마른 이유는 이곳의 기후 때문이다. 겨울이 우기, 여름이 건기로 겨우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곳도 있다. 얼마 전 해외 온라인 미디어에 ‘햇볕이 우리 몸에 미치는 놀라운 효능 8가지’라는 기사가 실려서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햇볕의 놀라운 효능은 그것을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햇볕이 쏟아지는 밝은 집에서 시 한 수 가슴에 품고 살면 모두가 가슴에 칼을 품고 살아가는 듯한 이 삭막한 세상이 그래도 좀 무디어지지 않을까.
이광훈 <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