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훈의 家톡] 전원주택 마당, 10평이면 충분하다

◆ 마당은 10평이면 돼… 선택과 집중을
최근 들어 전원주택을 찾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바람직한 변화는 땅에 대한 욕심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전원주택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1필지 최소면적이 490㎡(약 150평)였다. 필자가 1990년대 말 처음 개발한 경기 양평의 전원주택단지는 1필지 면적이 820~990㎡(약 250~300평)였다. 요즘도 큰 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수요자는 330㎡(약 100평) 미만의 작은 땅을 찾는다. 대신 집에 집중한다. 아주 어릴 적 잠깐 단독주택에 살던 기억밖에 없는 아파트 세대는 마당이 넓은 것보다는 집을 크게 짓기를 원한다.필자는 22년 전 490㎡의 넓은 대지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최근 5년 동안은 33㎡(약 10평) 미만의 작은 마당이 있는 집만 세 군데를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마당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좁은 마당에서도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살아왔다. 오히려 22년 전 넓은 마당을 혼자 관리하는 게 큰 부담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세대는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도 땅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을까. 도시생활에서 훈련된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주말 주택보다 시골 이주를 전제로 하는 실수요자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살아갈 집이 중요한 사람들은 땅이 얼마나 넓은지보다 어디에 있는가를 본다. 지금은 실수요가 대세다.

땅이 아니라 집이 전원주택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데 거의 20년 세월이 걸린 듯하다. 이제 집이 겨우 중심에 자리잡는 과도기에 있다 보니 집에 대한 욕심엔 거품이 제법 끼어 있다. 이 거품을 걷어내야 비로소 진정한 전원주택의 모습이 나올 것 같다.땅과 집에서 거품을 걷어내는 것 못지않게 사고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생활 편의시설에 대한 생각이다. 웬만한 크기의 아파트 단지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필요한 대부분의 편의시설을 단지 내 상가에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편의시설 접근성에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전철역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전원주택단지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트에 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10분 이상 이동하는 것은 기본이다. 병원, 학교, 쇼핑시설은 30분 이내 거리에 있으면 다행이다.

이런 현실의 절벽을 넘을 용기가 없으면 그냥 도시에 살아야 한다. 절벽 너머 도시에 없는 것들에 더 가치를 두고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로서의 전원주택을 바라보지 않으면 아파트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전원주택은 없다. 특히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 소음 공해를 비롯한 도시 거주의 필요악과 같은 것들은 전원생활이 아니면 원천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다.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감수해야 할 것이 있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누리는 혜택도 있다.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두느냐 하는 것이 도시와 전원생활의 선택을 가른다.

◆ 집, 보기 좋다고 살기 좋은 것 아니다
모더니즘 건축 아이콘 '판스워스 하우스'(왼쪽), 20세기 최고 건축물 '낙수장'.
‘건축학개론’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명품 주택이 세 채 있다.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거장이 설계한 작품이다. 한 채는 프랑스에 있고, 두 채는 미국에 있다. 프랑스에 있는 것은 건축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미국에 있는 것은 20세기 최고의 주택으로 찬사를 받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落水莊)’, 그리고 모더니즘 건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미스 반 데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다. 명실공히 유럽과 미국을 대표하는 명품 주택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만 연간 수십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들 주택은 지금도 수많은 건축가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집주인에게는 어떨까? 세 채의 명품 주택에는 지금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집주인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세 채의 집주인은 모두 자신의 주택을 명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으로서는 그랬다.

프랑스의 보험회사 중역이었던 피에르 사보아가 1928년 르 코르뷔지에에게 설계를 의뢰해 주말주택으로 지은 빌라 사보아는 부실 건축의 대명사였다. 집주인은 단열이 잘 되는 아늑한 집을 원했으나 사방으로 길게 난 수평창으로 추위에 시달렸으며 습기가 빠지지 않는 구조로 곰팡이를 달고 살았다. 9년간 고통을 받던 집주인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집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낙수장’의 탄생은 더 드라마틱했다. 미국 피츠버그의 백화점 사장이었던 카우프만의 의뢰를 받아 건축한 이 주택은 폭포 위에 지은 독특한 외관으로 완공되자마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라이트는 카우프만에게 이 집을 넘겨주면서 ‘당신이 폭포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폭포와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그게 문제였다. 내부 계단을 통해 폭포와 연결된 구조는 아름다웠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를 밤낮으로 듣는 것은 고통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건축물 중 경주 양동마을의 ‘향단(香壇)’이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지은 이 한옥은 지금도 자손이 살고 있으며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 주택이 유명한 것은 ‘□’자형의 독특한 구조와 마당이다. 작은 쪽마당에 불과하지만 기와 추녀를 따라 열린 하늘은 결코 작지 않다. 손바닥 안에 우주를 담은 형국이라고나 할까. 정말 명품 주택은 주택으로서의 기능을 지속하면서 이렇게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집은 보기 좋다고 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집으로서의 살기 좋은 요소는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돈을 투자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 '커피香' 낙엽 태우기도 수고가 필요하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에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봄의 절정기에 웬 낙엽 태우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낙엽은 봄에도 태울 일이 많다. 늦가을에는 바람이 심한 데다 산이 메말라서 화재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낙엽을 태우는 낭만을 즐기려다 경을 칠 수 있다.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봄에는 겨우내 바싹 마른 낙엽이 불쏘시개처럼 잘 타기 때문에 이때를 넘기지 않고 지난 계절의 찌꺼기들을 치워줘야 마당이 정리된다. 농부들이 봄농사를 짓기 전에 논두렁의 마른 풀을 태우는 것처럼 지난 계절의 흔적은 치워줘야 새순이 잘 돋는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낙엽을 태우면서’를 밑줄 그어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몰랐다. 이 글이 묘사하고 있는 단독주택 생활의 번거로움을. 가을, 겨울이 지나 늦봄에야 종종 마당의 낙엽을 태우면서 이 글이 새록새록 생각나지만 낙엽을 태우는 일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간단치도 않다. 일단 연기가 나지 않도록 불쏘시개를 잘 피워야 하는데 이슬에 젖은 낙엽은 사정없이 연기를 피운다. 낙엽을 태우는 연기는 꼬리가 길어서 어디서 피우는지 감출 수가 없다.

유난히 연기가 많이 나는 낙엽을 태우다 보면 119에 화재신고가 들어가서 소방차가 출동하는 소동도 벌어진다. 갓 볶은 커피 향기를 즐기려다 과태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기어코 낙엽을 낭만적으로 태우려면 무조건 긁어모으지 말고 펼쳐 놓고 충분히 바싹 말렸다가 조금씩 태워야 연기가 나지 않고 갓 볶은 커피 향을 즐길 수 있다.낙엽을 태우는 일처럼 전원의 낭만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다. 전원주택을 얘기할 때 연상되는 ‘꿈’과 ‘낭만’은 전원에 사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수고로움을 거쳐 누릴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차라리 그 단어를 땅에 묻어 버릴 수 있을 때 전원주택을 장만하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찾을 때까지는 낙엽을 태우는 꿈은 버리는 게 좋다.

이광훈 <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