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커잡] 커피로 점 보고… 달걀 넣고… 세계의 커피 문화

무심코 마셔온 커피 한 잔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알고보면 쓸데있는 커피 잡학사전(알쓸커잡). 그동안 연재된 내용을 주제별로 나눠 추석 연휴기간 전해 드립니다.

◆ 터키 커피
터키에서 커피 마시다 □을 봤습니다
Getty Images Bank
제목의 □는 뭘까요. 정답은 점(占)입니다. 우리에게 조금 낯선 터키의 커피숍에서 겪은 일 입니다.

동양과 서양을 다리 하나로 잇고 있는 도시 이스탄불. 몇 년 전 그곳을 여행할 때였습니다. 유럽과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는 그곳은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잘 맞았던 건 음식.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하는 듯한 육·해·공의 향연에 미각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 와중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술과 커피였습니다. 터키 ‘아재’들이 저녁 밥상에 꼭 올려놓고 한 잔씩 먹는 라키(Raki)라는 전통 술은 투명한 원액에 물을 부어 하얗게 변하면 마시는 술입니다. 맛은 못 봤습니다. 향이 방향제 같아서 도저히 입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었습니다.다음은 커피. 당시 이스탄불에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점이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터키 커피’만 팔았죠. 에스프레소보다 양은 조금 많지만 에스프레소는 아니고, 맛은 약간 텁텁한데 먹고 나면 바닥에 커피가루가 진흙처럼 남아 영 찝찝했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제게 카페 여주인이 다가와 갑자기 잔을 휙 뒤집었습니다. 잔에 남아 있던 커피가루가 받침으로 질질 흘러나왔죠.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습니다. 여주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터키어로 계속 말을 했습니다. 터키 친구가 해석해주는 말을 듣고 경악했습니다. “딴생각 말고 지금 하는 거나 열심히 해. 결혼은 서른셋쯤 할 거니까 서두르지 말라고.”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모두들 잔을 뒤집어 보면서 “넌 오늘 재수가 안 좋다” “이 정도면 괜찮다” 등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커피 점(占)을 치고 있는 거였죠.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잔을 뒤집어 점을 치는 게 전통이라네요.

터키식 커피 추출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방법이라고 합니다. 원두를 밀가루 정도의 입자로 곱게 갈아서 ‘체즈베(뚜껑 없이 손잡이만 있는 계량컵 모양)’나 ‘이브릭(주전자처럼 생긴 포트)’이라는 추출 기구에 찬물과 섞어 담고 불 위에 올립니다.그날 카페 여주인에게 체즈베로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워봤습니다. 커피물을 불 위에 올리고 거품이 올라오면 두어 번 내렸다 올렸다 반복하면 되더군요. 화력 조절이 어려웠죠. 센 불에 하면 금방 끓어올라 커피 맛이 덜하고, 약한 불에 하면 쓴맛이 강해진다나. 거품이 바글바글 올라올 때 순간 손목의 회전을 이용해 불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갖은 양념을 넣고 물을 자박하게 부어 뭉근해질 때까지 끓이라’는 한식 대가의 설명처럼 모호했습니다. 그때 사온 체즈베는 아직도 집에 모셔져 있습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쉽지 않은 그 맛, 가끔 그립습니다.

◆ 멕시코시티가 커피를 즐기는 방법
멕시코에선 '모닝커피' 찾지 마세요

멕시코에는 ‘소브레메사(sobremesa)’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라는 뜻이죠.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걸 말합니다. 소브레메사는 10분이 될 수도, 10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이 낳은 독특한 카페 문화도 있습니다. 대부분 카페는 낮 12시가 다가오는 늦은 오전에나 문을 엽니다. 세계 주요 도시 카페가 바쁜 직장인의 ‘모닝커피’로 먹고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가장 붐비는 시간은 이른 저녁 시간.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자유를, 일을 마친 사람에겐 하루를 다독이는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되는 셈입니다.

커피는 멕시코 문화의 일부이자 경제 그 자체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생산국 중 하나며, 세계 1위의 유기농 커피 수출국이죠.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정치판이기도 합니다. 그런 커피 강국에서 요즘은 스페셜티 커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거대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소규모 지역 농장과 함께하는 청년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멕시코시티의 특별한 커피 전통과 새로운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잡지가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미국에서 1년에 두 번 발행하는 무크지 ‘드리프트(Drift)’입니다. 2015년 1월 미국에서 처음 발간됐죠. 매호 한 도시를 선정해 커피 문화와 인물, 공간, 역사 등을 다룹니다. 지금까지 뉴욕, 도쿄, 하바나, 스톡홀름, 멜버른 등이 출간됐습니다. 한국어판은 올해 나온 멕시코시티와 스톡홀름, 멜버른 편이 있고요.

드리프트는 수십 명의 카페 오너와 커피 농장주, 손님, 로스터, 주변 상인, 작가, 사진작가 등을 섭외해 ‘그 도시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세기 초 6만여 명의 중국인 이민자가 멕시코로 이주하면서 이들이 어울리기 위해 선택한 것은 커피였습니다. 건설현장 노동자를 위해 중국인은 ‘카페 데 치노스(중국인의 커피)’라는 카페 문화를 만들어 달콤하고 값싼 빵과 커피를 내놨습니다. 지금도 ‘상하이 카페’ ‘카오룽 딜라이트’ 등 중국식 카페가 인기라고 합니다.

스톡홀름 편에는 ‘스웨덴의 양성평등이 커피 문화에 미친 영향’ 등 흥미로운 주제로 가득합니다. 멜버른 편에도 호주 남부의 작은 도시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도시가 됐는지 비밀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잡지명 드리프트는 ‘표류’라는 뜻입니다. 표류하는 사람은 특정 기간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일, 일상을 잊고 어떤 장소와 그곳 사람들의 매력에 이끌린다는 말이 있지요. 드리프트를 읽다 보면 커피와 함께 그 도시를 표류하는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 롱블랙, 숏블랙, 플랫화이트
호주의 '커피부심' 플랫화이트에 스타벅스도 백기

캥거루와 코알라, 청정 자연. 호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제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커피입니다.

요즘 잘나간다는 카페에 가면 잘 못 보던 메뉴가 눈에 띕니다. 롱블랙, 숏블랙, 플랫화이트.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도 헷갈리는데 이건 또 무슨 외계어냐고요? 모두 호주에서 시작한 커피 메뉴입니다.

호주 커피는 스타벅스 때문에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75개국에 ‘커피 제국’을 세우고 있는 스타벅스가 2008년 호주 진출 8년 만에 전면 철수하면서입니다. 당시 손실액만 1억4300만호주달러(약 1300억원)에 달했지요. 승승장구하던 스타벅스를 무릎 꿇게 한 호주 커피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1950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 이민을 떠납니다. 15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 이민자가 호주와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했죠. 이전까지 영국 지배를 받던 호주에 이탈리아인들이 에스프레소를 들고 등장했습니다. 신선한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 호주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멜버른에는 곧 로스팅회사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바 등이 생겨났습니다.

호주인들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호주 방식으로 변형시켰습니다. 라테보다 우유를 적게 넣고 에스프레소 샷은 더 넣은 플랫화이트,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섞은 롱블랙, 에스프레소 샷을 물 타지 않고 진하게 마시는 숏블랙 등이 등장했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 카페에서는 주문량의 80%가 플랫화이트라고 하니, 이 정도면 ‘국민 커피’로 불릴 만합니다.

플랫화이트는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확산됐습니다. 카푸치노와 비슷해 보이지만 계피 가루가 올라가지 않고, 우유가 적으면서 거품도 많지 않습니다. 진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지요. 머그잔이 아니라 작은 유리잔에 나오는 것도 다릅니다. 플랫화이트 인기가 높아지자 2015년부터 스타벅스와 네로 등 글로벌 커피 체인점들도 메뉴에 이를 추가했습니다. 다만 (호주에서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이름을 ‘리스트레토 비안코’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플랫화이트가 유명해지면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원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호주인들은 ‘1950년대 이전까지 100도로 끓인 물에 인스턴트 커피 과립을 넣어 마무리로 우유를 살짝 얹어 먹던 게 플랫화이트의 시초’라고 주장합니다. 뉴질랜드인들은 ‘한 커피 트럭에서 카푸치노 거품 만들기가 귀찮아 적은 양의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만든 게 시작’이라고 합니다. 누가 원조든, 플랫화이트로 세계 커피 시장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 실리콘밸리서 대유행 '버터커피'
커피에 버터를 퐁당… '방탄 커피' 아시나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돼 할리우드 셀럽들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진 커피가 있습니다. ‘방탄커피(bullet proof coffee·사진)’입니다. 커피에 버터를 퐁당 빠뜨려 먹기 때문에 ‘버터커피’라고도 불립니다. 이름이 왜 방탄커피냐고요? 커피에 버터를 타서 아침마다 마시면 총알을 막아낼 만큼 몸에 강한 에너지를 공급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이 커피는 실리콘밸리 출신인 데이브 애스프리가 티베트를 여행하다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야크 버터차를 마시면서 체온을 유지하고 식욕도 억제하는 걸 보고 새로운 커피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방탄커피 한 잔을 마시면 4~6시간 정도 포만감을 느끼고 오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마시면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게 알려지면서 스타벅스에서 한때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용 버터가 ‘핫한’ 조합으로 팔리기도 했습니다.

방탄커피 레시피는 이렇습니다. 먼저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 두 스푼을 물 한 컵에 넣어 진한 블랙커피를 만듭니다.

이 커피에 코코넛 오일 한 숟가락과 유기농 버터 한 숟가락을 넣어 기름이 뜨지 않을 때까지 20초 정도 믹서로 섞어주면 됩니다. 이때 버터는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무염버터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막상 생김새만 보면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커피 위에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란… 하지만 실제 맛을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고소하고 부드럽습니다. 설탕을 뺀 조금 진한 라테 맛에 가깝다고나 할까.

방탄커피의 실제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립니다. 저탄수화물 고지방식에 대한 찬반이 갈리는 것처럼 말이죠.

방탄커피 외에도 커피 인구가 늘면서 별별 커피가 다 등장하고 있습니다. 석탄커피, 강황라테, 유니콘라테처럼 비주얼이 화려한 커피들은 인스타그램의 단골 사진들입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라고 이름을 날렸던 사향고양이 똥에서 나온 ‘루왁커피'가 나온 뒤 대만의 ‘원숭이가 씹다 버린 커피', 베트남의 ‘족제비 똥 커피' 등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누군가의 ‘상술'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신가요? 하지만 사람들의 입맛은 참 보수적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커피 1위는 아메리카노니까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