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부동산 전문가들, 지난 1년 성적표 보니…"족집게는 여의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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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자·컨설팅·정보업체 지고 애널리스트 '각광'최근 부동산 시장에 '여의도파'가 뜨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등이 대표적이다. 통계를 기반으로 설득력 있는 전망을 내놓는 게 증권가 출신의 특징이다. 올해 서울 집값 급등을 미리 예측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반면 중개업자, 컨설팅업체, 부동산정보업체 출신 전문가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일부 컨설팅업체 출신 전문가는 올해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의 등장으로 ‘감’이나 ‘경험’으로 시장을 예측하던 시대가 저물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설득력 있는 시장 전망, 종합적 분석력 '강점'
◆ 2018 서울 폭등 전망하며 두각시대에 따라 부동산 전문가들도 부침을 거듭했다. 외환위기 전후로는 중개업자, 컨설팅업체, 부동산정보업체 출신 전문가들의 전성시대였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관련 종사자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투기’, ‘졸부’ 등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돼서다. 그렇다보니 현장에서 활동하거나 현장 정보를 수집하는 이들이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기획부동산(쓸모 없는 땅을 싸게 사서 쪼갠 뒤 비싸게 파는 중개업자)이었다. 법의 심판을 받은 이들도 많았다.2000년대 들어서는 대학교수(부동산학과), 은행 PB(프라이빗 뱅커), 부동산연구기관 연구원 등이 전문가 그룹에 가세했다. 부동산을 전공하거나 부동산 관련 연구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었다. 부동산 전망의 수준은 높아졌다. 다만 연구원이나 은행 PB는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소신있는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0년대 들어서는 증권가 출신들이 전문가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의 특징은 공대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철저히 숫자에 기반해 시장을 얘기한다. 기존 전문가나 언론의 주장을 통계로 철저히 검증했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과감하게 얘기한다.지난해 말 내놓은 2018년 부동산 시장 전망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7년 말 부동산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관점에서 올해 부동산 시장을 예측했다. 서울은 강보합, 수도권은 보합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대출 규제, 양도세 중과, 초과이익환수제 등 투기억제책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해서다.
지난해 말 건설산업연구원은 2018년 전국적으로 집값이 0.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수도권 집값은 보합권(0%), 지방은 하락(-0.1%)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6년 말 발표한 2017년 전망치(각각 2.0%, 2.1%)에 비해 크게 둔화된 수치였다. 당시 한 정보업체 센터장은 "강남 재건축, 용산, 한강변 등은 상승세를 타겠지만 서울 집값은 진정 국면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다른 연구원장 역시 "서울 집값의 지속 상승 가능성은 낮다"며 "공급이 많은 경기도로 실수요가 분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시장 전문위원은 "서울은 강보합이겠지만 재건축 시장의 상승요인이 떨어져 작년만큼은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의견이 달랐다. 채상욱 연구원은 전국 집값이 3% 상승률을 웃돌고 서울은 5% 넘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상우 연구원 역시 서울 집값이 12% 오르다는 등 폭등을 예상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저금리 시대을 맞아 베이비 부머들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 집을 파는 것이 아니라 더 구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서울 집값 상승론에 가세했다. 그는 “임대업자로 변신한 베이비부머가 2016년 이후 서울 집값 상승세를 견인했다”며 “정부는 증세와 대출규제를 통한 포위망 구축으로 집값을 잡고자 했지만 베이비부머는 충분한 자금조달 능력과 퇴직금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론은 이들을 "터무니 없다", "근거도 부족한 전망으로 집값을 부추긴다"며 비난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올해 초부터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강남 집값이 폭등했다. 상반기 내내 서울 집값이 이례적인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이들의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설득력 있는 전망으로 입지 확대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이 부동산 분야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하면서부터다. 증권사의 주 고객인 고객인 고액 자산가들이나 기관 투자가의 컨설팅 요구가 많아지면서다. 국내외 부동산 자산을 상품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판매하는 게 주 수입원 중 하나가 됐다. 이상우 연구원은 "그간 부동산 시장은 개인투자자, 실거주자 중심으로 흘러왔다"면서 "최근에 기관들이 수익률을 기반한 자산 관점으로 부동산에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여의도 전문가들이 관심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 규모가 커지고 관심이 높아진 것도 증권가의 이목을 끌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부동산은 장외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증권가에서 소외받았다"며 "지금은 부동산 역시 일반적인 자산의 움직임과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국민적 관심이 극에 달한 가운데 애널리스트들은 설득력 있는 시장 전망을 내놓으며 입지를 굳혔다. 저서는 연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각종 세미나, 토론회 등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인사가 됐다. 이상우 연구원이 지난 6월 선보인 '대한민국 아파트 부의지도'는 한달 만에 1만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여전히 경제경영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지난해 3월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망' 출간 후 1년 3개월 만에 낸 두번째 저서다.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언제, 어디에, 얼마짜리 집을 사야하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채상욱 연구원이 내놓은 '오를 지역만 짚어주는 부동산 투자전략' 역시 출간하자마자 인기를 얻었다. 2015년 5월 선보인 '뉴스테이 시대, 사야할 집 팔아야할 집', 2017년 5월 '돈되는 아파트 돈 안되는 아파트' 등에 이어 세번째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이 내놓은 ‘인구와 투자의 미래’도 부동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필독서란 평가를 받고 있다. ◆종합적 분석력 강점
호가 위주의 비과학적 분석 대신 통계를 기반으로 한 합리적 분석이 이들의 강점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부동산 관련 데이터가 많이 공개되면서 집도 주식처럼 가치평가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실거래가, 호가, 경매 낙찰률, 주택 공급률, 주택 착공과 멸실, 인구 통계, 주택구입여력지수 등 다양한 부동산 관련 통계와 지표가 모두에게 공개돼있다. 중요한 건 각 정보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다. 분석에 특화된 애널리스트들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구와 부동산 가격, 주택보급률과 노후도 등 각 통계 간 상관관계를 취합해서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을 분석하는 식이다.
민경남 케이엔프로퍼티즈 대표(전 KB자산운용 부동산펀드매니저)는 자칭 ‘엑셀 덕후’다. 부동산펀드매니저에서 전업투자자로 전향한 민 대표는 한 물건 당 수십개의 시트를 작성하고 분석해 수익률, 낙찰가율 등을 가정한 후 입찰가를 정한다. '쪽집게 전망'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상우 연구원도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서울 집값 상승률을 12%로 점친 것 역시 통계 분석의 결과다. 그는 "작년 12월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년 대비 10.9% 올랐다. 15~30% 오른 단지도 수두룩하다. 수급여건, 대내외 변수 등을 고려해 그냥 작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예상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 통계까지 들여다본다. 실제로 올해 ‘중국 부채:하이난에서 시작된 나비효과’ 보고서로 주목 받은 김효진 SK증권 리서치센터 자산전략팀장은 세계 지표를 이용해 한국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과 해외 시장의 비교가 필요할 때 주로 인용하는 자료가 국제결제은행(BIS) 통계다. 심 교수는 "국민연금이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처럼 증권업계가 부동산 분야까지 입지를 확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과 견해를 제시해 시장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소은 기자 luckys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