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돈은 크기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사람들이 돈만큼 관심을 보이는 것이 또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최근의 가상화폐 및 부동산 열풍을 보면 말이다. 초등학생이 가상화폐를 채굴하고 있다는 기사라든가 대학생도 부동산 갭투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돈에 대한 관심을 방증한다고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점은 돈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돈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가 돈의 크기에 따라 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집 근처 대형마트에서는 TV를 100만원에 팔고, 버스로 세 정거장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대형마트에선 똑같은 TV를 75만원에 판매한다고 하자. 이 경우 대부분은 25만원을 아끼기 위해 세 정거장 떨어진 대형마트로 발걸음을 옮긴다. 흥미로운 사실은 거래 금액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집 근처 자동차 매장에서는 소형차를 1775만원에 판매하고, 세 정거장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자동차 매장에선 같은 자동차를 175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번에는 TV 사례와는 달리 세 정거장 떨어진 매장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다. TV나 자동차나 세 정거장 떨어져 있는 매장을 이용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경우 얻는 이득은 25만원으로 동일한데도 말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25만원이라는 금액을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다. 100만원짜리 TV를 25% 할인해 75만원에 판매하는 경우에는 해당 금액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1775만원짜리 자동차를 2% 정도 할인해 1750만원에 판매할 때는 할인액 25만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위 사례를 통해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생활비에 쪼들리는 진짜 이유는 매달 내는 아파트 중도금 이자나 자동차 할부금과 같은 굵직굵직한 비용 때문이 아니라 점심값, 커피값, 담뱃값, 간간이 이용하는 택시비 등 일상의 소소한 금액들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들 금액을 합치면 아파트 중도금이나 자동차 할부금 못지않은 큰 금액이 된다. 하지만 이런 비용은 ‘심적 회계’로 인해 잡비로 여겨 소홀히 하기 일쑤다.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가상화폐나 부동산과 같은 좋은 투자 기회를 놓쳐서가 아니라 내 주머니에서 작은 돈이 빠져나가기 때문은 아닌지 따져보기 바란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