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M&A 시장서 역할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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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엘리엇' 나온다국내 최대 간편송금 서비스 업체인 A사는 최근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중국계 벤처캐피털(VC)로부터 4000만달러(약 445억원)가량을 투자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접어든 이 회사에 투자하고 싶었던 국내 사모펀드(PEF)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해외 투자자에 기회를 양보해야 했다.
10%룰·대출규제 폐지
주식·채권 섞어 자유롭게 투자
성장기업 투자 늘어날 듯
기업 구조조정서도 영향력 확대
A사의 최대주주는 지분 희석을 우려해 주식과 채권의 중간 형태인 ‘메자닌’ 투자를 바랐다. 하지만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대출이 금지돼 있어 메자닌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주식은 반드시 10% 이상 사야 한다’는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그러나 앞으로는 국내 PEF도 A사와 같이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금융위원회가 27일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 개편 추진방향’에 따르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에 적용되던 대출 금지 규제와 주식 10% 이상 취득 의무 규제를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과 벤처투자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는 셈이다.
우선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VC와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사이에 사각지대로 인식됐던 ‘그로스 캐피털(성장 자본)’ 시장도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기업 구조조정에서 PEF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통상 채권단이 매각하는 구조조정 기업의 경우 은행들은 주식과 채권을 모두 팔기를 원하지만, 국내 PEF는 채권을 살 수 없어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올초 중국 더블스타에 넘어간 금호타이어 인수전에 국내 PEF가 참여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유현갑 케이스톤파트너스 대표는 “해외와 달리 한국은 칸막이 규제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부실채권(NPL) 투자를 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는 PEF도 자유롭게 주식과 채권을 섞어 투자할 수 있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키는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대출 시장에서 은행과 경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신용도를 따져 돈을 빌려주는 은행과 PEF는 대출 대상과 목표 수익률이 완전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김수민 유니슨캐피털 대표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제정된 2004년에 이어 규제가 대폭 완화되는 올해는 토종 사모펀드에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라며 “이제 해외 PEF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