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 국채매각 전쟁… 中이 팔면 Fed는 더 판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달러 약세, 보복관세 부과, 첨단기술 개발 견제 순으로 이어진 미국과 중국 간 통상전쟁이 1년8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주 수단인 보복관세 대결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한 해 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미국이 5000억달러가 넘는 데 반해 중국은 1300억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략이 바뀌고 있다. 미국과의 보복관세 대결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에 타격을 줄 핵심 품목을 겨냥하는 대신 미국 이외 국가에 대해서는 관세 인하를 추진하는 이원적 전략(two track)이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면서 미국을 대신해 자유무역 주도국으로 확실하게 부상하겠다는 의도다.미국으로서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10월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급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수단은 미국 행정부 차원에서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1988년 종합무역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환율보고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교역국이 최우선 순위를 둬 대책을 강구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강력한 조치에 힘입어 무역적자가 개선되자 1995년 4월 역(逆)플라자 합의(선진국 간 달러 강세 유도 협약) 이후 미국의 외환정책이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방향(‘루빈 독트린’이라 부름)으로 바뀌었다.

2015년까지 이어진 이 시기에 달러 강세 용인으로 교역국 통화 가치의 평가절하가 문제되지 않음에 따라 환율보고서는 무의미해졌고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됐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이클 베넷, 오린 해치, 톰 카퍼 등 세 명의 의원이 주도해 ‘무역촉진법 2015’ 중 교역국 환율에 관한 규정(BHC법)을 대폭 강화했다.

BHC법에 따르면 △대(對)미국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며 그 비용이 GDP의 2%가 넘는 요건 순으로 모두 충족하는 국가는 환율심층분석 대상국(환율조작국), 두 가지 요건만 충족하는 국가는 환율관찰 대상국에 지정된다.

하지만 중국은 지정요건 하나만 걸려 있다. 원칙적으로 한다면 지금의 환율관찰 대상국에서도 빠져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정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는 것이 1988년 종합무역법이다. BHC법과 달리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유의미한 대미국 무역흑자 중 한 가지 요건만 걸리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종합무역법 지정요건이 부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트럼프 정부 들어 환율보고서가 갈수록 다른 목적과 연계돼 악용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HC 지정요건대로 운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의지(Trump’s volition)’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멕시코, 독일, 한국 등 주요 교역국의 고환율 정책에 대한 피해의식이 유난히 높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걸리면 25%, 10% 보복관세 대결을 하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견제 없이 행정명령으로 발동되는 ‘슈퍼 301조’에 의해 100%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미국 수출이 막히는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1990년대 환율조작국으로 걸렸던 교역국이 슈퍼 301조를 ‘전가의 보도’로 비유할 정도였다.

중국의 최후 카드는 미국 국채를 내다파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런 징후가 감지된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국가별 보유국채 현황을 보면 중국의 보유분은 지난 5월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7월에는 77억달러어치를 팔아 한 달 매각액으로는 가장 많았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예의주시해서 바라보는 통계다.한 나라가 미·중 간 마찰 등과 같은 비상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든 정책수단이 소진됐을 때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last resort) 역할이다. 중국의 보유 국채분이 감소하기 시작한 때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이 보유국채 매각 속도를 높이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돼온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국채 매각 전쟁은 참가자 모두가 손해를 보는 네거티브 게임이다. 중국은 국채가격 급락으로 자본 손실이 나고, 미국은 금리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 주도권 다툼’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 게임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