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2006년 1차 집권 땐 정책 서툴렀지만… 2012년 2차 집권 땐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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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첫 실패 후 '와신상담'…강한 리더십 발휘2007년 9월25일. 제1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집권 366일 만에 막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건강 문제를 사퇴 이유로 내세웠다. 실상은 각료들의 잇따른 부정 스캔들과 하극상, 총선 참패에 미국 연방하원의 ‘위안부 비난 결의안’ 통과 같은 외교적 실패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사임) 압력을 참지 못했다’는 미국 CNN의 보도는 설사를 핑계로 병원에 입원한 총리의 모습과 맞물리면서 희화화되기도 했다.
2006년 1차 집권기
GDP증가율·잠재성장률 하락세
인구 감소에 고령화사회 진입
추상적인 구호가 국정 우선순위
2012년 2차 집권기
법인세율 인하·엔화약세 정책
철저하게 親기업 현실노선 취해
6년간 GDP 12%↑·취업자 늘어
2005~2006년 日 경제·사회 지표
현재 우리와 유사…시사점 커
그랬던 아베 총리가 2012년 재집권 이후 승승장구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자리를 넘보고 있다. 와신상담하며 1차 집권기 실패의 경험을 곱씹은 결과다. 아베 총리가 집권했던 2006년과 2012년은 일본 사회·경제의 전환기였다. 아베 총리의 강한 리더십에 힘입어 ‘잃어버린 20년’의 암흑기를 뒤로하고 일본이 부활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2006년 일본과 2018년 한국
총리를 지낸 외조부(기시 노부스케)와 외무상을 맡았던 아버지(아베 신타로)를 둔 아베 총리는 2006년 취임 당시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최연소 총리(당시 52세)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젊은 총리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았다.
1차 아베 정권이 들어섰던 2006년 무렵 일본은 사회적·경제적으로 전환기였다.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04년 1.5%에서 2005년 1.9%로 일시적으로 높아졌을 뿐 그 뒤부터 하향세를 면치 못했다. 2006년과 2007년 1.8%로 떨어졌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엔 -3.7%, 2009년 -2%로 급전직하했다. 당시 일본 경제는 성장률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의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1차 아베 정권기 일본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더욱 두드러졌다. 1995~2004년 1% 수준을 유지하던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05~2009년 0.4% 수준으로 급락했다. 2008~2009년에는 0%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이도 이때의 일본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안팎에서 현재 2.8~2.9%가량으로 낮아졌다.
일본의 인구구조 변화도 그때 본격화됐다. 2005년 일본 인구는 처음으로 순감소로 전환됐고 2000년 17.4%였던 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 20.2%로 20%를 넘어섰다. 한국은 지난해 고령화율이 14.2%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경제 부활 이끄는 아베의 리더십지속된 장기 불황에 고령화가 급속히 심화하면서 당시 일본에선 효율적인 경제정책 마련이 중요했다. 하지만 정책 운용은 무능했고 행정 관리도 부실했다. 국민연금 기록관리 부실로 5000만여 건의 연금 기록이 유실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망신 끝에 아베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혼란은 이어졌다. 일본에선 이후 6년간 6명의 총리가 교체됐다. 2009년에는 중국에 GDP 순위 세계 2위 자리를 내줬고, 2010년 중국과 센카쿠열도 영토분쟁이 벌어지는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은 수세에 몰렸다. 2006년 9월 4.1%였던 실업률은 2009년 7월 5.5%까지 높아졌다. ‘취직 초 빙하기’가 도래했고 ‘로스제네(잃어버린 세대)’ ‘마케구미(패배자)’ ‘슈카쓰(취업활동)’ ‘곤카쓰(결혼활동)’ 등 팍팍한 사회 현실을 반영한 비관적 용어들이 등장했다.
아베 총리는 야인이 된 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쿨어스50과 같은 각종 싱크탱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전의 정책 실패를 곱씹었고 재집권 시 도입할 정책을 준비했다. 이때 경제전문가를 만나 아베노믹스의 큰 틀을 짰다.2012년 총리로 권토중래한 뒤에는 철저히 ‘경제 최우선의 현실 노선’을 취했다. 구로다 하루히코를 일본은행(BOJ) 총재로 임명하며 엔화 약세와 함께 양적완화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쳤다. 1차 집권기에 손도 대지 않았던 법인세율을 2012년 이후 네 차례나 낮췄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30%에서 23.2%로 떨어졌다. 전임 민주당 정권의 ‘원전 제로(0)정책’을 뒤집고 원전 재가동에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현실적 경제정책을 편 효과는 뚜렷했다. 2012년 말 492조8000억엔(약 4926조원)이었던 명목 GDP는 5년 만에 552조8000억엔으로 12% 넘게 증가했다. 취업자는 251만 명 늘었다. “일본 경제가 한 단계 다른 레벨로 올라섰다”(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명예교수)는 호평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가토 이즈루 도쿄단시리서치 연구원은 “정부가 ‘일본 경제의 걸림돌을 제거해달라’는 경제계 요청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반응한 점이 정책 성공의 첫 번째 요인”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가 내건 국가 아젠다는 분명하다. 정부 정책의 목표를 ‘1억 총활약 사회’ ‘일하는 방식 개혁’ ‘지방창생’ 등 국민 눈높이에 맞춘 간명한 메시지에 담아내고 있다. 다카야스 고이치 다이토분카대 교수는 “강한 리더십이 뒷받침하는 아베노믹스 효과가 일본 경제를 되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