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링해 답 찾지말라"… 아이들이 드릴로 3D 모형 만드는 '별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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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포럼 2018학년도 없다. 시험도 없다. 심지어 교사도 없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별난 학교’ 브라이트웍스(Brightworks) 얘기다. 2011년 설립된 대안학교 브라이트웍스는 이른바 ‘팅커링(tinkering)’ 스쿨로 불린다.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think), 만들면서(make) 프로젝트에 기반한 학습을 하는 학교라는 뜻이다. 설립자인 게이버 털리는 “아이들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만들기를 통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철학을 담아 학교를 운영 중이다.
미래를 여는 도전
교육혁신 현장을 가다 - (1) 브라이트웍스
학년·시험·교사 '3無 학교'
나이차 적은 '또래 밴드' 조직
교사 대신 협력자가 도우미 역할
"생각하고 만들면서 배워라"
열기구 직접 만들어 낙하 실험
물리·지구과학 원리 등 익혀
드라이버·드릴·절삭기 쓰지만
철저한 안전교육…사고율 '제로'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학교"
메이커 공간 1000곳 이상 구축
◆‘드릴·절삭기’ 들고 공부하는 학교브라이트웍스에는 학년이 없는 대신 ‘밴드’라는 게 있다. 레드, 블루, 그린, 인디고(쪽빛), 앰버(호박) 등 다양한 색깔 이름이 붙은 밴드에서는 최대 세 살까지 차이가 나는 8명 안팎의 학생이 가족처럼 함께 지낸다. 유치원 수준부터 고등학교 수준까지 학생 90여 명이 있다. 털리 씨는 “학생 사이에 나이 차이가 있어 서로 롤모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며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각 밴드에는 교사 대신 ‘컬래버레이터(협력자)’가 배정된다. 단순히 무언가를 알려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율성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놀이터처럼 뻥 뚫린 공간이 이색적이다. 원래 마요네즈 공장으로 쓰던 3층 높이의 건물이다.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모빌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띈다. 앳된 학생들이 귀여운 고슴도치와 함께 생물 공부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드라이버 드릴 절삭기 등을 직접 들고 집을 짓거나 3차원(3D)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털리 씨는 “아이들이 절삭기를 쓴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처음에는 놀라곤 한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수백 명의 아이가 수천 번 넘게 사용했지만 단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안전교육이 이뤄질 뿐만 아니라 컬래버레이터들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와주고 있어 사고율이 ‘제로’라는 설명이다.
◆열기구도 직접 제작해 띄워
브라이트웍스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기반한 융합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면 물리 교육뿐만 아니라 교통신호 체계부터 자동차, 비행기 원리까지 공부하는 식이다. 초등학생 수준으로 구성된 한 밴드는 프랑스 몽골피에 형제가 1783년 열기구를 제작해 인간을 최초로 하늘에 올려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 직접 기상 관측용 열기구도 제작했다.
약 한 달간에 걸쳐 뜨거운 바람을 거대한 풍선 안에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탐구했고, 탑재 장비를 안전하게 떨어뜨리기 위한 낙하 실험도 했다. 열기구가 떠오른 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풍향과 지도 축척을 공부했다.
학생들이 제작한 열기구는 성공적으로 하늘로 띄워져 8만2000피트(약 25㎞) 상공까지 올라갔다. 이후 기압 차이로 열기구가 터지고, 탑재 장비는 낙하산을 펼치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털리 씨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앞으로 20년 뒤에도 열기구의 원리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단순히 교과서에 있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 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메이커 운동’ 강조하는 미국
브라이트웍스 학생들은 불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옷은 엉망이 되기 일쑤다. 가전제품을 직접 분리해보기도 하고, 예술 작품도 만든다. ‘구글링’으로 쉽게 답을 찾아내는 지식을 넘어 학생들 스스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험해 보는 과정을 중시한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학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브라이트웍스와 같은 창의 교육을 강조하며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을 ‘메이커의 나라’라고 선언하며 2015년 6월 메이커 교육을 확대하는 주요 정책을 내놨다. 연방기관, 비영리기관, 시 정부, 학교 등을 통해 1000개 이상의 메이커 공간을 구축하도록 했다. 박물관, 과학관, 도서관 등을 활용해 메이커들이 창작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했다.메이커 운동의 창시자로 꼽히는 데일 도허티 메이크(Make:) 최고경영자(CEO)는 “젊은이들이 뛰어난 재능을 활용해 만들고,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급격히 변하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교육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안정락 특파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