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의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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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인사아트센터서 30주기展 개막메이지 일왕의 조카인 아버지와 규슈지방 유지의 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은 일본에서 귀족 대우를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일본 왕세자였던 히로히토와 혼담이 오갔던 그는 왕손을 낳을 수 없다는 관상 결과가 나와 왕세자빈 후보에서 탈락한다. 이후 그가 만난 사람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 왕손을 못 낳게 될 것을 알고는 일본이 조선의 대를 끊기 위해 영친왕과 약혼시킨 것이다. 1962년 일반인 신분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창덕궁 낙선재에 살며 지체아와 장애아의 재활을 돕는 데 평생을 바쳤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마사코) 여사 이야기다.
사군자·도자기·칠보 등 170점 전시
올해는 그가 서거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이 여사가 생전에 그린 그림과 도자기, 칠보 등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유작전이 3~15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고미술 전문화랑 고은당이 이 여사 서거 30주년을 기념해 30년에 걸쳐 수집한 수준급 작품만 골라 내보이는 자리다. 전시에는 묵란 등 사군자와 화조도 50점, 서예 18점, 도자 34점, 칠보 32점, 기타 35점 등 모두 170점의 작품이 걸린다.출품작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아하면서 담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기교를 멀리하고 속기(俗氣)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작품들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매화 가지에 앉은 새 한 쌍을 포착한 수묵 담채 ‘한매쌍작’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린 수작이다. 영친왕과의 애절한 사랑이 활짝 핀 매화처럼 녹아 있다. 근대 한국화 대가 이당 김은호와 월전 정우성에게 그림을 배운 그의 사군자 그림도 여러 점 걸린다.
일본에서 배운 칠보 기술을 바탕으로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해 제작한 칠보 작품도 나온다. 칠보는 금속 등 재료에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과정을 거쳐 아름답고 귀한 색상의 보배로운 물건을 제작하는 공예 기법이다. 한복이나 흉배, 족두리 등의 칠보 작품은 장애아를 돕기 위해 자수 편물을 즐겼던 그의 예술적 기량을 잘 보여준다. 말년에 관록이 쌓이면서 그의 칠보 예술은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국정민강’ ‘근검애본’ 등을 쓴 글씨, 호산 안동오·도천 천한봉과 함께 빚은 도자기, 1년에 걸쳐 제작한 칠보 혼례복과 결혼 기념엽서, 가구 등도 나온다.
정하근 고은당 대표는 “일본에서 기념관을 짓고 싶다며 계속 연락해오고 있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남편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알고 평생 봉사한 분이 잊히고 있어 안타깝다”며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 사람을 사랑해 장애인을 50년 가까이 돌봤다는 사실과 그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들이지만 그 자체로 예술성이 높은 점 등을 알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