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김정은과 사랑에 빠진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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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석 워싱턴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요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칭찬한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고 훌륭하다”고 얘기한 건 약과였다. 다음날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용기와 (미사일 실험장 폐기 등) 그가 취한 조치에 감사한다”고 했다. 1년 전 같은 장소에서 “북한 완전 파괴”를 연설했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지난달 26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꺼내 보이며 “역사적인 편지였다. 아름다운 한 편의 예술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1일 웨스트버지니아주 유세에선 “그는 내게 아름다운 편지들을 썼다”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까지 했다. 듣는 쪽도 민망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우려되는 '과속 스캔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을 비춰 볼 때 김정은도 직·간접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운 듯하다. 뉴욕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한 김정은의 메시지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기대” “트럼프 대통령만이 이(비핵화와 체제 보장) 문제를 해결” 등 칭찬 일색이다. 여기에 더해 김정은은 그동안 ‘직접 비핵화 의지를 밝힌 적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달 19일 3차 남북한 정상회담 뒤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육성으로 밝혔다.
하지만 관건은 철저한 검증이다. 김정은이 지금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이 말이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직접 발표한 신년사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성과로 내세우며 ‘책임 있는 핵 강국’으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북한 노동당은 지난 4월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경제건설 집중’ 노선으로 전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핵 개발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경제에 주력할 때’라는 의미였다. 북한은 과거에도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번번이 말을 바꾼 전력이 있다.이런 학습효과 때문에 미국 여론 주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과속 스캔들’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북한이 아직까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여준 게 없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립 서비스'만으론 믿을 수 없어
미국 언론도 계속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NBC 방송은 지난달 10일 미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올해 5~8개의 새로운 핵무기를 생산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도 핵무기를 계속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엿새 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 ‘조용한 핵 보유국’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그리고 이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문 대통령 덕분에 한반도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 독일 통일을 이룬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라고 했다. 어쩌면 지금이 ‘신의 옷자락’을 잡아채야 할 때인지 모른다. 이 기회를 잡아채 북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을 이룬다면 누가 뭐래도 노벨평화상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립서비스’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아름다운 말’들이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도록 검증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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