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33) 결혼 후 처음이야! 추석에 친정부터 갔더니 생긴 일

지난 추석 연휴를 앞둔 어느날, 결혼 1년차 후배가 말했다.

"설에는 시댁 갔으니까 추석에는 친정에 가려고요."이런 제안을 먼저 했다는 후배 시어머니의 센스에 감탄하면서 요즘 명절 풍속이 사뭇 달라졌음을 느꼈다.

결혼 13년차인 나는 생각도 못 해 본 발상이었다.

하긴 나도 딸만 둘인데 훗날 아이들이 없이 남편과 둘이 명절 준비할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 한 켠이 허전하다.'설날엔 시댁, 추석엔 친정'. 이 얼마나 듣기만 해도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인 말인가.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이제 막 생겨나고 있기 때문인지 아직 내 세대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한 친구는 "동서가 둘이 있는데 한 명은 몸이 아파 추석에 못 내려오고 또 한 동서는 출장을 가는 바람에 혼자 장보기부터 제사음식 준비, 일가친척 25명분의 음식 장만은 물론 설거지까지 도맡아 했다"고 하소연했다.친척들이 끊이지 않고 왔고 매번 술상을 준비하느라 추석 당일 밤 12시가 돼서야 친정에 갔다면서 "다음 설에는 나도 아프고 말겠다(?)"고 농담섞인 울분을 토했다.

신세대 며느리인 후배는 "제사는 남편의 조상을 모시는 것이잖아요. 며느리인 나는 살아생전 그분들 얼굴 한 번 뵌 적도 없는데 내가 제사 준비를 도맡아 하고 정작 남편은 그걸 돕는다? 이게 정상적인 건가요?"라고 지적했다.

정작 살아계신 내 부모님은 딸이 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이번 추석에도 여느 때처럼 시어머니가 장만해두신 재료로 전을 부치는 게 내 담당이었다.

친정 어머니가 입원중이셔서 병원으로 찾아봬야 하는데 추석날은 당직이고 추석 다음날은 남편이 일해야 해서 도대체 언제 다녀와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남편과 의논 끝에 시어머니께 허락을 받은 후 추석 전날 전을 다 부친 후 당일치기로 친정에 다녀오기로 했다.

친정에서 하루 자고 추석날 오겠다는 말까지는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성껏 만든 전과 송편을 가지고 지방으로 내려가며 연락해보니 명절을 병실에서 보내는 게 안타까웠던 친정 오빠가 외출 허가를 받아 병원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오고 있다 했다.

생각지 않게 친정엄마 병문안에서 '추석 전날 친정행'이 돼 버리고 만 것.

결혼 13년만에 명절 전에 친정을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설렌다.

명절 전에 찾은 친정행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변화는 내 방문을 예상치 못했던 올케 언니의 표정이었다.

예전 명절에는 내가 시댁서 추석을 보내고 내려가면 이미 오빠 가족은 처갓집으로 떠나고 없거나 남아있더라도 시누이가 올 때까지 남아서 나를 맞는 올케언니를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친정에 왔는데 그들은 시누이가 올 때까지 시댁에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던가.

1년에 1~2번 명절에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조카들은 항상 외갓집으로 떠날 준비를 하거나, 짐을 싸고 있곤 했다.

자주 보지 못하던 사촌 언니오빠를 만난 우리 딸들이 마냥 반가워하며 "언니 좀만 더 놀고 가면 안돼?", "왜 벌써 가?"라며 아쉬워하는 것조차 어찌나 눈치가 보였던지.

하지만 명절 전야에 만난 올케 언니는 유난히 나를 반가워했다. 함께 도와 음식 장만을 할 수 있는 지원군이 한 명 늘었다는 생각에 기뻐보였고 나도 눈치 안보고 여유있게 대할 수 있어 마음이 세상 편했다.

술잔을 나누는 기쁨도 평소와는 다른 점이었다.

전엔 처갓집으로 곧 떠나야 할 오빠들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을 마셨다가 출발시간이 지체된다면 올케 언니의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앞에 모인 가족들은 모두 막 음주를 시작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마시고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이전에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던 날이 언제였던가 생각하니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다.

시끌시끌 벅적벅적 까르르르.

'아, 이런 게 명절이었지.'

13년 전 결혼하기 전에는 평범한 일상이었던 모습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랐다.

"시어머니와 한바탕 한 후 남편이 시댁에 가서 앞으로 제가 시댁에 안올거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추석에 시댁에 내려가지 않았죠. 최고의 추석을 보냈어요."

며느리들의 폭풍 공감을 받았던 영화 'B급 며느리'의 한 대목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후배와 같은 경우가 점점 늘어나면서 며느리도 아들도, 사위도 딸도 스트레스 없이 즐겁기만 한 명절을 보내게 되길 기대해 본다.
워킹맘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부모i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