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노벨상 받은 '면역항암제'

고두현 논설위원
암 치료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지만 최초의 항암제가 나온 것은 70여 년 전이다. 2차 세계대전 때인 1943년 12월, 독일군 공격을 받은 미국 상선에서 독가스(겨자가스)가 유출됐다. 배에 타고 있던 민간인과 주변의 연합군 함대 병사들이 가스에 노출돼 처참하게 죽어갔다.

미국 약학자 앨프리드 길먼과 루이스 S 굿맨은 이들의 사인을 분석하던 중 독가스의 유도체가 암세포를 저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년 후 이들은 혈액암의 하나인 림프종 치료약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1세대 ‘화학항암제’는 독약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어서 정상세포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2세대 ‘표적항암제’가 개발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다른 세포에 영향을 덜 미치는 이 치료제는 ‘마법의 탄환’으로 불렸다. 하지만 주변세포의 손상은 막을 수 없었다. 쉽게 내성이 생기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 2014년에 나온 3세대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건강한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하고 내성까지 줄여주는 치료제다. 그래서 ‘페니실린의 발견’에 버금가는 성과로 꼽힌다. 얼마 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피부암 흑색종을 치료한 것도 면역항암제다. 우리나라의 폐암 말기 환자 역시 이 약으로 완치해 화제를 모았다.

면역항암제 원리를 발견한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교수와 제임스 앨리슨 미국 텍사스대 암센터 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의 연구 덕분에 최근 암세포를 굶겨죽이는 4세대 ‘대사항암제’와 미세 장비를 이용한 ‘나노항암제’ 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일본에 5번째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겨 준 혼조 교수는 어제 인터뷰에서 “젊은 나이에 대학 동급생을 위암으로 떠나보낸 뒤 암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며 “시대를 바꾸는 연구에는 ‘6개의 C’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기심(curiosity)과 용기(courage), 도전(challenge)과 확신(confidence), 집중(concentration)과 연속(continuation)이 그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극히 기초적인 연구에서 출발해 새로운 암 면역요법을 발견했다”는 그의 ‘6C 정신’에 힘입어 인류가 암(cancer)을 완전히 정복할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도 암이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