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한·독 제조연합군'이 필요하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지금부터 150년 전인 1868년.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단행됐다. 3년 뒤인 1871년엔 독일에서 최초의 통일이 이뤄졌다. 통독의 주역은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그해 12월23일 100여 명의 일본 지도자로 구성된 이와쿠라사절단이 선진문물 견학을 위해 구미로 떠났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거쳐 1873년 3월15일 비스마르크를 만났다.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이었던 독일을 단번에 중심에 우뚝 올려놓은 게 비스마르크다. 그는 통독에 이어 보불전쟁에서도 승리해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다.

비스마르크로부터 부국강병에 대한 얘기를 들은 이와쿠라사절단은 귀국 후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뒤 독일을 국가발전의 모델로 삼았다. 그로 부터 불과 20여 년 뒤 일본은 아시아 유일의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했다. 그 밑바탕엔 독일과의 협력이 깔려 있다. 각종 제도와 기술을 도입해 근대화에 성공했다. 지금도 일본 기업은 독일과의 협력을 중시한다. 140여 년 역사의 세계적인 공작기계업체 독일의 길드마이스터와 일본의 모리세이키가 합병해 디엠지모리로 재출발한 게 그중 한 예다.日·中이 독일을 배우는 까닭

그로부터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독일을 배우는 데 가장 앞장서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제조업 발전전략 ‘제조 2025’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4차 산업혁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중국은 해마다 30~40개의 독일 핵심 기술 기업을 인수한다.

최근 들어 독일 아헨공대 프라운호퍼연구소 등에서 몸담고 있는 교수 연구원 등이 줄지어 한국을 찾고 있다. 독일의 첨단기술을 소개하고 이를 이전하기 위한 것이다. 때로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한국과 협력하려는 움직임도 있다.지난 9월 중순엔 토마스 그리스 아헨공대 교수와 이태헌 프라운호퍼연구소 그룹장 등 아헨 지역 관계자들이 내한해 ‘한·독 자동차산업 협력 세미나’를 열고 미래 자동차에 대해 논의했다.

오는 11월8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는 프라운호퍼연구소 한국사무소 개소 10주년 기념으로 독일기술세미나가 열린다. 독일에서 약 20명의 전문가가 방한해 스마트센서, 첨단소재, 스마트 생산기술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소개한다.

위기 돌파 위해 한·독 협력 긴요독일이 100점짜리 국가는 아니다. 디젤게이트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자동기어 전신기 발전기 장거리로켓 TV 브라운관 전자현미경 등 수많은 근대문명의 이기가 독일이나 독일인에 의해 개발됐다. 괴팅겐대는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만 40명을 배출했다. 이는 일본 전체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이젠 우리가 독일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제조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 중 필요한 내용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특히 전통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은 제조 분야에서 ‘한·독 연합군’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뿌리가 깊은 독일과 순발력이 뛰어난 한국 기업이 협력하면 차세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독일과 협력해 성공한 사례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헨공대와 협력해 복합소재 접착 관련 신기술을 개발한 유니테크도 그중 하나다. 협력 방법은 다양하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조업 추락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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