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미미쿠키와 해독주스…'착한 먹거리'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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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배추 떴다방’이라는 게 있다. 전국 배추밭에 11월부터 약 두 달간 성행한다. 간이 천막을 치고 동네 사람이 모여 밭에서 갓 딴 배추를 소금에 절여 김장용 절임배추를 만든다. 위생설비나 위생모는 없다. 포장된 절임배추는 ‘산지직송’ ‘무공해’ 등의 이름표를 달고 인터넷을 통해 판매된다. 20년간 한 기업에서 김치만 연구해온 A씨는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면 내 가족에게는 절대 못 먹일 정도의 제조 수준이 대다수인데 댓글, 후기만 보고 덥석 구매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배추 떴다방이 떠오른 건 ‘미미쿠키’(사진) 사태와 ‘클렌즈 주스’ 효능에 대한 정부 발표 때문이다. 미미쿠키는 충북 음성군의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유기농 재료, 무방부제로 만들어 아기에게 먹여도 안전하다고 홍보해왔다. 아들의 태명 ‘미미’를 회사명으로 짓고 ‘부부가 직접 만든다’며 엄마들의 신뢰를 얻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없어서 못 파는 쿠키’가 됐지만 결국 대형마트 제품을 재포장해 판 것으로 밝혀졌다. 코스트코에서 145원인 쿠키를 400원에, 4000원짜리 SPC삼립 롤케이크를 7500원에 포장만 바꿔 되팔았다.
수년째 해독(디톡스)효과로 포장돼온 ‘클렌즈 주스’는 일반 과일주스와 성분과 효능, 기능 면에서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결론냈다.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댓글. 대형 식품업체는 광고에 건강 또는 의학적 효과를 명시할 수 없다. 온라인 업체는 다르다. 무허가 판매자도 많고, ‘감성팔이’ 마케팅이 판을 친다. 미미쿠키 후기에는 ‘가족 중에 암환자가 있는데, 이 쿠키만 드십니다’ ‘아토피로 3년째 고생하는 딸에게 먹여도 안전하네요’ 등이 수백 개나 달려있다. ‘해독주스’도 그렇다. 피부가 맑아지고, 머릿결이 좋아지고, 2주 만에 몸무게가 빠졌다는 글이 넘친다. 단속을 강화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모든 판매자를 단속할 수 없다.제2의 미미쿠키 사태를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먹거리에 대한 전 국민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음식과 약을 혼동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다. ‘먹어서 치료하고, 먹어서 낫게 한다’는 비과학적 사고방식, 대기업 공장에서 제조한 식품은 안전하지 않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이 미미쿠키를 만들어냈다. 유기농은 무조건 좋고, 농약은 나쁘다는 이분적 사고도 문제다. 국내에 등록된 작물보호제(농약) 1944개 품목에는 맹독성은 하나도 없다. 유기농이 몸에 더 좋다는 근거는 더더욱 없다. ‘수제’라는 개념도 재정의해야 한다. 가내수공업이 더 안전하다는 건 환상이다. 얄팍한 상술에 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정부의 유기농 인증, 해썹(HACCP) 인증 등을 확인하는 습관이 절실하다. 옆집 사람의 댓글보다는 훨씬 믿음직한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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